[사람과 이야기] "아내 사진 볼 때마다 말 걸지요"

    입력 : 2010.01.09 03:02

    97세 송방용 前국회의원, 9년째 유골함 머리맡에 두고 思婦曲
    평생 서로 존댓말 써 "사랑은 주는 기쁨이 더 커 받기만 했기에 못잊는 것"

    "'나 일어났소. 나 다녀왔소' 항상 볼 때마다 말을 걸어요. 늘 한방에 있으니까 아직도 같이 사는 것 같아…. 내 아내 참 곱지요?"

    부인 얘기를 꺼내는 노옹(老翁)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전 국회의원 송방용(97)옹은 부인의 70대 시절 사진을 쓰다듬으며 "아내에게 평생 빚을 지고 살았다"고 했다. 운구차에 오를 때만 해도 몰랐는데 막상 유골함을 받고 나니 도저히 납골당에 두고 올 수가 없더란다. 송옹은 2001년 8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부인 이복쇠 여사의 유골함을 9년째 머리맡에 두고 살며 사부곡(思婦曲)을 읊고 있다.

    "테이크 잇 이지!(Take it easy)"

    70년 아래 기자를 맞이하는 송옹의 첫마디는 뜻밖에도 '긴장을 풀라'는 영어였다. 편안하게 대해주고 싶다는 표현이었다. 지난 7일 서울 마포동 집 거실에서 만난 송옹은 "이래 봬도 내가 연희전문(현 연세대학교) 영문과 출신 아니냐"며 읽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요즘도 아침이면 1시간씩 돋보기를 끼고 신문을 읽는다고 한다.

    제2·3·10대 국회의원과 2005년부터 2년간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을 지낸 송옹은 176㎝ 키에 몸가짐 정갈한 노신사였다. 앉고 일어나는 데 조금 불편해 보였을 뿐 목소리는 우렁찼고 말도 정연했다. 날씨가 추운 요즘에는 집안에서 1시간씩 왔다갔다하며 걷기 운동을 한다.

    송옹은 24세 되던 1937년 봄 세 살 아래 부인을 중매로 만난 날짜까지 기억했다. "4월 6일 날씨가 아주 좋던 날, 봄 코트를 팔에 걸고 창경원 수목원에서 처음 만났어요. 다음날 덕수궁에서 내가 한 번 더 보자고 했지. 한강변에 가서 내 코트를 깔고 앉으라고 하고 얘기를 나눴어요. '시골에 내려가 모도 심고 호미질도 해야 하는데 살 수 있겠느냐' 물었더니 할 수 있다더라고요."

    전북 김제 태생인 송옹은 1936년 연희전문을 수석으로 졸업한 뒤 고향으로 내려갔다. 당시 춘원 이광수의 소설 '흙'을 읽고 농촌 계몽 운동을 펼치고 싶어서였다. 할아버지가 전남 곡성 군수, 아버지가 여수 군수였던 집안에서 자라며 어릴 때부터 '도련님'으로 통했던 송옹은 부인을 만날 즈음 문맹 퇴치 교육에 여념이 없었다.

    원로 국회의원 송방용옹은 9년 전 사별한 부인을‘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불렀다. 그는“국회의원 3선을 한 것도 내가 잘나서 한 게 아니라 모두가 아내 덕”이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두 사람은 만난 지 한 달 만인 5월 6일 결혼식을 올렸다. 달콤한 신혼생활도 잠시였다. 3일째 되던 날 부부는 김제로 내려갔다. 송옹은 100여 가구 사는 시골 마을에서 남자들을 모아놓고 한글과 산수를 가르쳤다. 경성보육학교(유치원교사 양성학교)를 졸업한 부인은 부녀자들을 가르쳤다.

    1950년 김제에서 무소속으로 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게 된 것도 그때 가르쳤던 제자들 권유 때문이었다. 그는 "국회의원 되는 것보다 국회의원 부인 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더라"며 작심한 듯 부인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누라 자랑은 팔불출임을 안다"고 먼저 운을 떼고 나서였다.

    "내조(內助) 없이는 못하는 게 국회의원입니다. 새벽부터 찾아오는 손님들로 집안은 항상 시끌벅적했지요. 국회의원 됐다고 친척 아이들까지 우리 집에 맡겼지만 한마디 불평 없었지요. 돌이켜 보니 내조란 게 이런 거구나 싶더군요."

    그는 "3선 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집안 손님들을 따뜻하게 맞아준 아내의 내조 덕"이라며 "집사람은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요정 정치를 했던 당시 셔츠에 빨간 입술 자욱 찍고 들어가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이마에 '내 천(川) 자' 한 번 안 만들며 모르는 척해줬다고 회고했다.

    64년을 해로하는 동안 부부는 평생 존댓말을 썼다. 부인은 5년간 치매와 당뇨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송옹은 치매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만 해도 부인의 건강 상태를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고 했다. 평소 남편에게 이렇다 할 불평 한번 하지 않던 부인은 끝까지 남편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송옹은 부인과 사별 후 외손자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외손자 며느리 이소연(34)씨는 "결혼하고 나서 할아버지가 방에서 혼잣말을 해 뭔가 봤더니 '나 이제 잡니다' 하고 사진을 보며 대화를 하시더라"며 "처음엔 거부감이 좀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 애틋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송옹은 요즘도 부인을 '천사'라고 부르며 생각날 때마다 손자 부부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한다. 아내 생일과 기일(忌日)이 되면 꽃다발을 사와 유골함 앞에 놓아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외손자 며느리가 만든 음식 맛을 보고 "너희 할머니는 이렇게 안 했다"며 타박할 때도 있지만 이씨는 "섬기는 관계 같은 두 분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노옹이 생각하는 사랑은 뭘까? "받는 쪽보다 주는 쪽 기쁨이 더 큰 게 사랑인 것 같아요. 주는 사람은 사랑이 뭔지 알기 때문에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받는 사람은 그걸 모를 수도 있지요. 나는 평생 받는 쪽이었지요. 그래서 이렇게 더 잊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송옹은 요즘도 일주일에 3번은 꼬박꼬박 국회 헌정회관에 나간다. 원로 국회의원들과 바둑도 두고 소일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쉬는 날은 100세를 대비한 자서전을 쓰기 위해 그간 삶을 기록하는 작업에 여념이 없다.

    "유언처럼 자식들한테 이야기해 뒀지요. 내가 죽으면 내 유골은 아내 유골함에 같이 담아달라고…. 그리고 납골당에 두든 강물에 띄우든 너희 마음이라고요."

    부인 이야기를 길게 풀어낸 노옹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인터뷰가 끝나자 노옹은 그새 유골함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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