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1963년생인 베이비붐 세대는 전쟁 이후 출산붐을 타고 태어났고, 1970년대부터 산업화의 주역으로 소비와 생산의 주도 세력으로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책임져 온 세대다. 베이비붐 세대는 초등학교 시절 한 학급 인원이 120명에 달하기도 해 수업을 1~3부로 나눠서 받을 만큼 경쟁이 치열했지만 기회도 많았던 세대였다.
불붙은 교육열 덕에 상당수가 대학 등 고등교육의 혜택을 받았고, 경제가 태동하면서 여러 기업이 생기는 등 기회가 많았다. 1956년생부터는 중학교 입시를 보지 않고 추첨으로 학교가 배정됐고, '58년 개띠'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해부터는 본고사가 폐지되고 연합고사제로 바뀌어 평준화 시대를 맞았다. 중동에 건설노동자로 나가 외화벌이에 앞장서기도 했고,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할 무렵에는 분당·일산 등지에 신도시가 세워졌다.
국립대 교수 A(54)씨는 "우리가 살아온 시기는 역사적인 시점으로 치열했을 뿐이지, 기회가 많고 거듭 풍요로워지는 시기였다"며 "요즘같이 극한 경쟁을 뚫지 않아도 취업할 수 있었고, 살아오면서 살림살이가 계속 나아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손성동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은 "386세대가 5·18 민주화운동(1980년)과 6월 항쟁(1987년) 등을 겪으면서 민주화에 앞장서 온 세대라면, 베이비붐세대는 막강한 수적 우세로 경제성장을 이끌어 왔다"며 "386세대와 달리 우리 사회의 모든 변화를 겪어오면서도 발언은 자제했고 정체성도 농업사회와 도시문화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후배 세대에게 치이는 시기도 있었고, 1997년 IMF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평생을 몸바친 회사에서 짐을 싸야 하는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나일주 서울대 교수(교육학과)는 "국민 소득 66달러(1955년)를 2만달러(2007년)로 상승시켜 경제성장 신화를 창조한 세대지만, 동시에 개인적 행복보다 가족과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도록 요구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위로는 부모 권위에 눌리고, 아래로는 자식 눈치를 보는 '샌드위치 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30여년의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부모 부양과 자녀 양육의 이중부담을 짊어지느라 노후 준비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