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물품·서비스 기부하는 '디딤돌' 프로그램

    입력 : 2010.01.05 02:30 | 수정 : 2010.01.05 16:54

    "나도 어렵지만…" 17개월 만에 2300개 업체 참여
    "'자장면', '짬뽕'외치는 모습 보면 나도 기분 좋아져"

    시각장애인 어머니를 두고 있는 서울 강서구 방화동 방원중학교 3학년 이선옥(16)양은 지난해 5월 관내 늘푸른나무복지관에서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무료로 학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곳이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초등학교 때까지 전교 1~2등을 다투던 이양은 막상 중학교에 들어가자 학원 과외로 무장한 친구들을 당할 수 없어 성적이 곤두박질해 상심하던 차였다. 이양 가정은 다른 수입이 없는 기초생활수급대상. 차마 학원비를 달라고 조를 수 없었던 처지였다.

    이양은 이후 제플린학원과 대사종합학원에서 입시영어와 종합과목 강의를 들었고, 이제는 자신감이 생겨 "2학기 때는 반에서 5등 안에 꼭 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제플린학원 서인화(44) 원장은 "이양이 처음에는 다른 원생들 학습 수준을 따라가지 못해 힘들어했지만 이제는 속도가 붙어 지난달 중급반으로 월반했다"며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있고 머리가 좋아 충분히 상위권에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양은 "꼭 의대에 들어가 의사가 돼서 엄마같이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20년 전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노원구 공릉동에 중국집 '안시성'을 연 이숙자(67)씨. 이씨는 7년 전부터 바로 앞 장애인들을 위한 '다운복지관'에 있는 지적장애인들에게 한 달에 두 번씩 자장면을 대접한다.

    이씨는 "그래 봤자 얼마 들지도 않는데 뭘 대단한 일이라고…"라면서도, "장애인들이 어린아이처럼 '자장면 주세요', '난 짬뽕'이라고 외치며 즐거워하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용욱 사회복지사는 "장애인 가정 방문을 나가면 '자장면 언제 또 먹으러 가느냐'고 보챈다"고 했다.

    '디딤돌'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트윙클문고' 김호일 사장이 매장에서 평소 학용품을 지원했던 아이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이위재 기자 wjlee@chosun.com

    2300여개 업체에서 3만여명 도와

    서울시내 상점·학원·기업·개인 등이 자율적으로 물품이나 서비스를 기부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서울형 지역사회 복지모델인 '디딤돌'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고 있다. 2008년 8월 처음 출발, 참여업체는 100여개에서 2300여개로 가파르게 늘었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3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서울시는 "'디딤돌'에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사람들은 대부분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손을 내미는 '동병상련(同病相憐)'형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도봉구 창동에서 문구점 '트윙클문고'를 운영하는 김호일(47) 사장은 어렵게 가게를 운영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지난해부터 디딤돌 사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49㎡(15평) 크기 작은 문구점을 10년째 꾸리고 있는 김 사장은 매달 학용품 5만원어치를 인근 창동종합복지관에 전달, 저소득 가정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맡기고 있다. 또 동네를 돌며 폐지를 모아 판 돈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보태고 있다.

    김 사장은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이 사업에 대해 알게 됐다"며, "문구점 안에 돼지저금통 2개를 놓은 뒤 자전거나 축구공 바람을 넣으러 온 아이들에게 공기주입기를 빌려주는 대가로 100원씩 저금통에 넣도록 권유하고 있다"고 했다. 김 사장 자신도 매일 첫 물건을 파는 순간 200원, 퇴근할 때 200원씩 돼지저금통에 저금하는데, 이렇게 모은 16만원을 지난달 복지관에 저금통째 기증했다.

    넉넉지 않지만 더 어려운 이웃 배려

    중랑구 상봉동 '예닮숯불생고기 마을' 권미영(41) 사장은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오래전 이혼한 뒤 혼자서 음식점을 운영하며 두 아들을 키운 모자(母子)가정의 여성 가장이다. 권 사장은 가정폭력 피해 상담전화를 통해 시련을 극복했던 과거 기억을 떠올리며 "나도 주위의 도움을 받아 일어섰기 때문에 이런 고마움을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올 초 지역 복지관 문을 두드렸다. 그 뒤 한 달에 2~3차례씩 모자 가정 가족들과 저소득층 노인들을 식당으로 불러 고기를 구워주고 있다.

    3년 전부터 매달 노인 100분에게 갈비탕을 대접하는 송파구 거여2동 '여해갈비', 노인들에게 무료로 빵을 나눠주는 종로구 이화동 '밀라노베이커리', 홀몸 노인들에게 갈비탕 점심을 선사하는 동작구 사당동 '백제갈비', 기초노령연금(월 8만8000원)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부대찌개를 포장 배달해주는 노원구 상계동 '박대박 부대찌개', 시각장애인들에게 무료 과외를 해주는 고려대 사회봉사단 학생들, 장애 가정을 돌며 망가진 가구를 고쳐주거나 새 가구를 만들어주는 서대문구 북아현동 가구업체 '코지하우스'….

    '디딤돌'이란 징검다리를 통해 이웃들에게 작은 정(情)을 나눠주는 가게들이 나날이 늘고 있다. 치과·보청기 판매상·미용실·안경점·패밀리 레스토랑 등 업종도 다양하다.

    서울시 신면호 복지국장은 "어려운 때일수록 이웃의 따뜻한 손길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며 "이들이 쌓아나가는 조그만 사랑의 실천을 통해 아이들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면서 꿈을 키우고 어르신들은 따스한 음식을 통해 이웃의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디딤돌'은

    ‘디딤돌’ 사업은 서울시가 주도적으로 나서 각종 업체나 상점들이 주변 저소득 주민들을 도와줄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서울시복지재단이 총괄하고 25개 구별 201개 복지시설이 거점이 되어 운영된다. 물품을 기부할 수도 있고 상담·진료·이사 등 서비스로도 도울 수 있다. 2008년 8월 시작, 올 11월 현재 2311개 업체에서 2만6946명에게 온정(溫情)을 나눠주고 있다. 음식점이 1065곳으로 가장 많고 보건·의료 345곳, 위생(목욕탕·이미용실·세탁소 등) 318곳, 교육 227곳 등 순이다. 지역별 거점 기관은 인터넷(didimdol.welfare.seoul.go.kr)에서 찾을 수 있다. (02)2011-043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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