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고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발굴은 19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에 의한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이다. 기원전 14세기에 태어난 투탕카멘은 9세에 왕위에 올라 18세에 죽은 왕으로, 무덤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이름조차 기억 못 했을 어린 왕이었다. 나일강 서쪽 '왕의 계곡'에서 발견된 이 무덤은 대부분 이미 도굴된 다른 파라오들의 무덤과는 달리 밀봉 이후 아무도 묘실(墓室)과 보고(寶庫)에 침입한 적이 없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들어가는 문을 처음 연 카터는 당시를 이렇게 기록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러나 점점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방안의 것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상한 동물들, 조각과 금…. 어디에나 황금이 번쩍이고 있었다."
파라오의 시신은 세 겹의 관 속에 있었는데 맨 안쪽 관의 순금만 해도 약 114kg에 달한다는 사실은 고대 이집트 무덤에 왜 도굴꾼이 들끓었는지 이해가 된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는 이 외에도 약 5000여 점의 전차(戰車), 아름다운 가구, 장신구와 공예품, 조각 등이 발견되어 당시 이집트 왕실의 호화로움을 보여준다.
가장 눈길을 끄는 조각은 셀케트(selket) 여신상이다. 약 90㎝ 높이의 이 여신상은 도금된 네모난 상자의 면에 두 손을 벌려 보호하는 자세로 서 있는데, 그 상자 안에는 파라오의 신체 내부의 장기를 담아둔 항아리가 들어 있다. 전갈의 머리 장식을 한 셀케트 여신은 죽은 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여신상의 표현에서 특이한 점은 거의 모든 이집트 조각이 정면 부동상인 데 비해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리고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왼쪽과 오른쪽 높이를 조금씩 다르게 처리한 겉옷과 더불어 좌우대칭의 딱딱함을 훨씬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몸에 딱 달라붙은 옷 역시 굴곡 있는 신체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품위를 가지면서 섬세하고 고혹적인 이 여신상은 약 3300년 전의 이집트 공예가들이 얼마나 뛰어난 기술과 감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입력 2009.12.2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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