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홍성군청 사건 막으려면

입력 2009.12.25 23:16

박중현 사회부 차장대우

24일 오후 충남 홍성군청. 3층 부군수실로 올라가는 계단 세로면마다 파란 바탕에 흰 글씨로 '투명하고 깨끗한 청렴 홍성 건설' '청렴한 공직자, 부패 없는 클린 홍성' 같은 표어들이 붙어있었다.

전체 공무원(677명)의 16%인 108명이 지난 5년 동안 복사용지, 복사기 토너 같은 소모성 사무용품을 구입한 것처럼 허위로 서류를 꾸며 군청 예산 7억여원을 빼돌린 사실이 최근 검찰 수사로 드러난 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어였다.

홍성군은 2006년 당선된 이종건 군수가 2007년 버스공영터미널 이전과 관련해 50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가 지난 10일 대법원에서 징역 3년6월에 추징금 5000만원이 확정돼 중도하차한 곳이다. 그래선지 군청 차원에서 수년째 '청렴'을 강조해왔지만, 이번에 집단 횡령 사건이 또 터지자 공무원들은 거의 넋을 잃은 표정들이었다.

홍성군청에서 예산 횡령은 16개 과 중 축산과 한 곳을 뺀 15개 과와, 11개 읍·면 중 9곳에서 일어났다. 이 사건 연루 공무원들은 검찰 조사 때 "누구나 그 자리(과 서무)에 있으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또 일부 개인적 유용 사실이 드러난 사람을 빼고는 모두 "(빼낸 예산을) 부서 운영비나 회식비로 썼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홍성군청 공무원 모두가 횡령에 가담한 것은 아니다. 묵묵히 공복의 소임을 다 해온 공무원들은 자신들을 싸잡아 범죄집단처럼 보는 시선이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108명 외에도 많은 직원이 동료의 예산 횡령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눈치채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공무원 한 집단 전체가 비리에 둔감해지는 현상은 왜 생기는 걸까.

우선 군청 내부적으로 비리 가능성을 차단하는 시스템이 없는 게 문제였다. 예산을 횡령한 공무원들은 주로 군청 각 과 서무(대부분 7급)들로, 복사용지 등을 샀다는 내용의 가짜 서류를 재무과로 보내 예산을 타냈다. 그런데 이 물품들이 제대로 납품됐는지를 확인하는 사람도 각 과 서무였다. 예산을 신청하는 사람과 예산 집행 결과를 확인하는 사람이 같으니, 예산으로 장난쳐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기초자치단체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점도 문제를 키웠다. 홍성군청에서 이런 비위를 자체적으로 적발해내야 할 감사실도 같은 수법으로 5년간 2000만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을 정도로 '한통속'이었다.

그렇다고 충남도가 제대로 감사하는 것도 아니다. 충남도는 횡령이 진행되던 2006년과 2008년 홍성군에 대해 행정사무감사를 벌였지만, 이런 예산 집단횡령 낌새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행정안전부나 감사원 같은 중앙정부 기관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기초자치단체에 대한 감사를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기초자치단체의 거의 모든 공무원이 타 지역과 인사교류를 하지 못하고 한 곳에서 정년을 맞을 때까지 근무하는 점이다. 홍성군의 경우 부군수 등 서기관 1~2명 정도만 타 지역에서 인사교류로 전입해올 뿐, 나머지는 모두 홍성군에서 9급부터 시작해 정년까지 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감사실을 포함한 군청 내 각 부서를 돌며 '가족 같은 끈끈함'을 유지하는 탓에 '범죄'까지 공유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홍성군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기초자치단체도 갖고 있는 것이다.

정체돼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정부 차원에서 기초자치단체 공무원들을 타지와 순환교류시키는 새로운 인사제도와 제대로 된 감사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홍성군청 사건'은 다른 지방에서도 계속 터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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