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대기후… 전제정치의 부재… 기술혁신 문화… 부국(富國)이 잘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조선일보
  • 이한우 기자
    입력 2009.12.26 02:37

    국가의 부와 빈곤
    데이비드 랜즈 지음|안진환 최소영 옮김
    한국경제신문|918쪽|3만7000원
    영국 산업혁명 가능했던 건 지식·앞선 기술이 있었기에

    고전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의 원제 'The Wealth of Nations'를 염두에 둔다면 미국 하버드대 랜즈(85) 경제사 명예교수의 1999년도 야심작 《The Wealth and Poverty of Nations》를 우리말로 옮긴 이 책의 성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두 작업의 차이는 전자가 시장의 법칙을 찾아내려 한 데 비해, 후자는 지난 600년간의 세계 역사를 경제사가의 눈으로 조망하면서 부국화(富國化)와 빈국화(貧國化)의 경향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랜즈는 자신이 철저하게 시장과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스미스의 충실한 제자임을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블룸버그뉴스
    저자는 서두에서 온대기후에 부국들이 집중해 있고 열대기후에 빈국들이 포진해 있는 현상을 이렇게 풀이한다. "일반적으로 더위의 불편은 추위에 따른 불편을 능가한다." 이때 불편이란 노동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말한다. 게다가 추위의 고통을 결정적으로 덜어준 불의 발견(혹은 발명)은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반면 더위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에어컨이 상용화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저자는 미국에서도 애틀랜타·휴스턴·뉴올리언스 같은 남부 신도시들이 중흥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으로 에어컨의 등장을 꼽는다.

    여기까지는 애교다. 중세 후기부터 근대 초기까지의 유럽 역사를 조망하면서부터 저자는 '유럽이 세계 문명을 이끌 수밖에 없었던 내부적인 요인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유럽(그리고 미국)이 부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지역과 달리 유럽에는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전제주의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게르만의 전사(戰士) 문화에서 시작된 사유재산 존중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것도 모든 것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는 전제군주의 부재(不在)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유럽에도 전제정치가 만연하기는 했지만, 법과 영토 분할의 구도 때문에 그 힘이 그렇게 세지는 못했다." 이 틈바구니에서 경쟁이 생겨날 수 있었고, 지방영주 간의 경쟁은 선한 백성에 대한 선한 보살핌을 낳았다. 이는 다시 개인의 주인의식과 권리의식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유럽, 그중에서도 서(西)유럽인들의 발명과 기술혁신 문화는 다른 지역이 따라오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종이는 중국이 발명해 1000년간 손과 발에 의존해 제조되어 왔지만 유럽인들은 13세기에 전수된 종이제조법을 기계화했다. 인쇄술 또한 중국에서 시작됐지만 인쇄의 기계화, 즉 활판인쇄를 가능케 한 것은 유럽이다. 11세기에 중국에서 발명된 화약이 유럽에 들어온 것은 13세기 말~14세기 초다. 그러나 16세기에 오면 유럽인들은 화약을 개량하고 종(鐘) 제작 기술을 대포 제작에 접목시켜 세계 최고 성능의 대포로 무장하게 된다. 여기다가 장인들의 작업 수명을 늘려준 안경이 13세기 말 이탈리아 피사에서 발명됐고, 해시계나 물시계가 아닌 기계시계도 중세유럽의 발명품이다. 기계시계의 등장은 단체활동에 구두점을 찍는 역할을 했으며, 개인에게는 작업을 계획하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게 해주었다.

    이후 저자는 왜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가능했던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불가능했는지를 조명한다. 지식 및 노하우의 지속적인 축적과 정치적 사건이나 천재적인 개인의 등장 등 특정 시점에서의 한계 돌파가 영국에서는 있었다. 반면 다른 나라, 특히 비유럽 지역에서는 국가가 지식 및 노하우의 축적을 가로막았다. 마침 18세기 초 영국은 가내공업, 화석에너지의 이용, 산업혁명의 핵심이 된 직물·철·동력 등 주요 부문의 기술이 앞서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때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영국도 전성기인 19세기가 끝나갈 무렵에 쇠퇴의 조짐을 보인다. 독일·프랑스 등 인근 후발국가들이 추격해온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 요인은 내부에 있었다. 이를 저자는 영국 자동차산업의 흥망을 통해 보여준다. "가내수공업자들의 독립성에 대항하기 위해 노동을 감독할 수 있는 공장 시스템을 발전시켰던 영국이 자동차 산업에서는 다시 작업자에게 독립성을 주는 시스템을 공장 안에 정착시켰다." 그룹이나 팀별로 임금을 지급하게 되자 속도가 가장 느린 사람에게 보조를 맞춰 생산이 이뤄진 것이다. 당연히 미국·독일·일본 자동차와 경쟁이 되지 않았다. 서투른 경영이 화(禍)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미국과 일본 자동차를 한국 자동차가 바싹 따라붙고 있다는 지적을 빠뜨리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경제지리결정론자'라거나 '유럽중심주의'라는 비판은 핵심을 비켜간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우리가 경제발전의 역사에서 뭔가를 배운다면 그것은 문화가 모든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부국화 문화인가, 빈국화 문화인가를 심각하게 묻게 만드는 묵직한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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