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0.5㎜ 샤프심으로 숭례문을 복원?

조선일보
  • 김성민 기자
    입력 2009.12.26 02:38 | 수정 2009.12.26 18:05

    공예가 추정훈씨 미니어처 작품"짧게 자른 샤프심은 튼튼한 재료"

    추정훈(秋正訓·23)씨의 책상에는 '보물상자'가 있다. 가로 25㎝ 세로 20㎝ 높이 15㎝ 크기다. 그 안에는 보석 대신 6㎝ 탱크, 3㎝ 다보탑, 3.5㎝ 풍차가 들어있다. 다 샤프심으로 만든 것들이다.

    "샤프심과 다이아몬드는 둘 다 탄소로 이루어졌잖아요. 이게 제겐 다이아몬드입니다." 추씨는 국내 최초의 샤프심 공예가다. 최근 그는 화재로 전소(全燒)한 숭례문을 샤프심으로 복원해 화제가 됐다.

    그가 만든 샤프심 숭례문은 가로 13㎝ 높이 7.5㎝로 추녀마루에 잡상과 용머리가 있고 현판이 달려있다. 이 작품에는 보통 샤프에 쓰이는 0.5㎜ 샤프심 30통, 0.9㎜ 2통, 2㎜ 네모난 샤프심 24통이 사용됐다.

    그는 숭례문 모형 안에 손전등에서 떼어낸 LED 램프 3개를 달아 푸른 빛이 흘러나오게 했다. 사라진 숭례문을 자기 손으로 재현하겠다는 결심은 언제부터? 추씨는 "어릴 적부터 만들고 싶은 게 생기면 손이 근질거렸다"고 했다.

    추정훈씨에게 샤프심 공예는 언제나 새로운 도전이다. 0.5㎜, 0.3㎜ 가늘디가는 샤프심은 그의 손에서 작품이 된다. 사진은 추씨가 만든 샤프심 숭례문 모습. / 추정훈씨 제공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이쑤시개로 의자와 침대 모형을 만들었다. 시중에 판매되는 프라모델과 페이퍼 도안을 구입해 만들기를 즐겼다. "뭐든 만들고 나면 기분이 좋았어요. 목공소 다니시는 아버지의 재주를 물려받았나 봐요."

    2005년 수능을 치르고 그는 색다른 만들기를 시도했다. 스테이플러 심으로 귀걸이를, 마카로니로 하트모양 액세서리도 만들었다. "스테이플러 심과 마카로니는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샤프심이에요."

    그의 첫 샤프심 작품은 1㎝ 높이의 의자다. 약한 줄만 알았던 샤프심은 그에겐 튼튼한 재료였다. 1㎝, 1㎜ 크기로 자른 샤프심은 의외로 부러지지 않았다. 그 뒤 추씨는 샤프심 공예에 빠졌다.

    지금까지 그는 나무의자 3종 세트, 다보탑, 풍차, 비행기, 탱크, 식탁, 오두막, 신전을 만들었다. 컬러 샤프심을 이용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고, 2006년 월드컵을 기념해 독일 도르트문트 축구경기장을 만들기도 했다.

    그가 만든 작품 중 가장 작은 것은 0.1㎜ 샤프심으로 만든 의자다. 이것은 0.3㎜ 샤프심을 직접 갈아 만들었다. 크기도 쌀알보다 작다. 작품 만드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그는 먼저 소재를 정하고 곧장 도서관으로 향한다.

    만들려는 것의 설계도로 구조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 비교한 뒤 도안을 그린다. 그는 "치수만 쓰여 있어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도안"이라며 "만들려는 것을 3~4부분으로 나눠 시작한다"고 했다.

    샤프심을 붙이는 데는 순간접착제와 목공용 접착풀이 이용된다. 얇은 샤프심에 접착제를 골고루 바르기 위해서 이쑤시개가 사용된다. 그는 "보통 작품 하나에 접착제 두 통이 들어간다"고 했다.

    새로운 공예이기에 작품에 필요한 도구도 추씨가 직접 제작했다. 샤프심을 일정한 간격으로 자를 수 있게 나무젓가락에 커터칼을 넣어 도구를 만드는 식이다. 그는 "작업을 하다 필요하면 그때그때 바로 도구를 만든다"고 했다.

    작품 곳곳에 붙은 조각상들은 연필심을 직접 깎아 만들었다. 181㎝의 키에 80㎏의 작지 않은 체구에 시력이 0.1로 안경을 낀 그가 이런 세밀한 작업을 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는 한자리에 앉아 짧게는 2~3시간을, 길게는 4일 밤낮을 새우며 작업을 한다. 이번에 만든 숭례문은 본격적인 작업만 3주가 걸렸다. 추씨는 "샤프심이 자주 부러지지만 만드는 것이 즐거워 콧노래를 부르면서 한다"고 했다.

    그는 만든 작품을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다. 더 많은 사람에게 샤프심 공예를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할 일 없어 이런 짓을 하느냐'는 악플도 달렸어요. 그 악플을 보며 스스로 자극이 되라고 지우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문구점에 가면 제일 먼저 샤프심을 찾는다. 그의 책상에는 30여개의 샤프심이 있다. 그는 "신기한 샤프심만 보면 무조건 사고 본다"며 "예전에 태극기를 만들려고 했는데 흰색 샤프심이 없어 포기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의 작품을 사려는 사람도 있을까. 그는 "3명이 작품을 사고 싶다고 연락했지만 안팔았다"며 "숭례문의 경우 재료비가 3만원이지만 100만원에도 팔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계원예대 공간연출과 휴학 중인 그는 샤프심 공예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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