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탄절에 차우셰스쿠(루마니아 독재자) 총살했다"

조선일보
  • 이용수 기자
    입력 2009.12.25 03:04

    루마니아 前장병 인터뷰
    미군 오기전에 급히 집행…
    사형선고 받은 뒤에 울던 모습 꿈에 나타나

    변호사 도린마리안 키를란(Cirlan·47)

    "기독교 신자로서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건 끔찍한 일이죠. 그것도 성탄절, 그 거룩한 날에 말입니다."

    변호사 도린마리안 키를란(Cirlan·47)은 20년 전 성탄절에 자신이 사살한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Ceausescu)의 마지막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사형 선고를 받은) 그가 내 눈을 쳐다보더니 이제 죽게 됐다는 걸 실감하더군요. 그리곤 울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악몽 속에서 그 모습을 봅니다."

    당시 루마니아 육군 정예부대인 제64 보테니 낙하산 연대 소속 부사관이던 그는 다른 장병 2명과 함께 차우셰스쿠 부부를 총살했다. 24일 영국 더 타임스가 그를 인터뷰했다.

    1989년 12월 25일 이른 아침 키를란은 연대장이 자원자 8명을 뽑는다는 말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착륙 지점은 수도 부쿠레슈티의 한 군부대. 이들을 맞은 것은 빅토르 스탄쿨레스쿠(Stanculescu) 국방장관이었다.

    차우셰스쿠의 심복에서 시민 혁명의 편으로 돌아선 그는 장병 8명 앞에서 "차우셰스쿠는 인민에 의해 심판받을 것"이라며 "총 쏠 준비가 된 자는 손을 들라"고 명령했다. 8명 모두가 손을 들자 스탄쿨레스쿠는 "너, 너, 너"라며 3명을 골랐다. 키를란과 대위 1명, 상사 1명이 선발됐다.

    키를란은 특별군사법정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재판과정을 지켜봤다. "엘레나(차우셰스쿠의 부인)는 이 법정을 인정할 수 없다고 불평했어요. 변호인들은 마치 검사처럼 행동했죠. 나중에야 모든 게 엉터리였다는 걸 깨달았죠." 사형 집행은 배심원의 사형 평결이 나오자마자 이뤄졌다. 10일간의 항소 기간이 주어졌지만 간단히 무시됐다. 누군가 "서둘러! 미군 6함대가 이들을 구하려고 헬리콥터를 지금 막 보냈다. 빨리빨리 행동해!"라고 고함쳤다.

    포박을 당한 채 벽에 기대선 차우셰스쿠는 "반역자들에게 죽음을"이라고 부르짖더니 사회주의 운동 가요 '인터내셔널가(歌)'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1절도 채 마치기 전에 키를란과 동료들의 총이 불을 뿜었다. 1인당 30발씩, 총 90발의 총탄이 독재자 부부를 향해 날아갔다.

    차우셰스쿠는 집권 24년간 공포정치와 고립외교로 나라를 도탄에 빠뜨려 1989년 12월 민중 봉기의 빌미를 제공했다. 지금도 루마니아인들은 대부분 차우셰스쿠를 증오한다. 하지만 2시간 만에 끝난 그의 약식 재판은 졸속적이고 불법이었다고 여긴다. 키를란도 마찬가지다. "그건 재판이 아니었어요. 정치 살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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