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의 한파가 몰아닥친 올 2월 중국 내 주요 자동차 제조회사들은 공장 라인 보수를 이유로 생산량을 20% 안팎 줄였다. 1월 말부터 시작된 춘제(春節·우리의 설) 연휴를 맞아 1주일에서 길게는 보름씩 공장을 멈추고 장기 휴가에 들어간 곳도 많았다.
그 무렵 베이징현대는 신차종 생산 준비를 위해 1~2일 멈춘 것을 제외하곤 생산을 계속했다. 휴일 특근도 이어졌다. 생산량은 평소보다 오히려 더 늘었다.
◆멈추지 않은 공장
도요타, 폴크스바겐 등 현대차의 주요 경쟁사들은 올해 금융위기로 중국 내 자동차 수요 급감을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자동차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중국 정부가 내수 진작책의 일환으로 배기량 1.6L 이하 승용차에 대한 구매세를 차값의 10%에서 5%로 줄이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자동차 수요가 얼어붙을 것이라는 예상이 보기좋게 빗나가 버린 것이다.
2월 들어 준중형, 소형차의 수요는 급증했지만 생산을 멈췄던 회사들은 재고가 바닥나 일선 딜러들의 주문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됐다. 반면, 현대차는 딜러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자동차를 출고할 수 있었다.
차량 모델 면에서도 베이징현대의 우위가 뚜렷했다. 엘란트라(한국명 아반떼)와 경쟁하는 도요타의 코롤라나 혼다의 시빅은 1.8L가 주력이어서 초기 시장 대응이 불가능했다. 뒤늦게 정책 수혜가 있는 1.6L 이하 모델 쪽으로 판매를 집중했지만 한번 불붙은 엘란트라의 바람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현대차의 중국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는 올 들어 11월 말까지 51만 6000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지난해보다 무려 94% 정도 급증한 수치이다.
올해 전체로는 57만대의 판매가 예상되고 있다. 증가율 면에서 경쟁사인 닛산(51.3%), 폴크스바겐(38.2%), 혼다(17.9%), 도요타(9.7%) 등을 압도했다. 시장점유율(7.0%)도 2007년 이후 2년 만에 중국 시장 4위 업체 자리를 되찾았다.
◆현지화 모델 '위에둥(悅動)'의 위력
베이징현대의 올해 최대 효자 품목은 중국형으로 뜯어고친 신형 엘란트라 위에둥(悅動)이다.
위에둥은 기존의 구형 엘란트라에 비해 차량 내·외부를 키우고 외관의 볼륨감도 더 강화한 모델. 같은 배기량이라면 덩치가 커 보이는 모델을 선호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내놓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 시장에 등장한 위에둥은 올 들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올 11월 말까지 21만8571대가 팔려 중국 시장 내 전체 자동차 모델 중 판매 순위 2위를 기록했다.
베이징현대는 현지화 모델인 위에둥의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 올 하반기 신형 NF쏘나타와 구형 EF쏘나타의 중국형 모델인 링샹(領翔)과 밍위(名馭)도 내놓았다. 백효흠 베이징현대 부사장은 “위에둥과 밍위는 중국 소비자들을 상대로 한 정밀 마케팅 조사를 거쳐 내놓은 모델”이라며 “앞으로 대량 판매되는 전략 차종은 기본적으로 현지화 과정을 거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신·구형 동시 파는 병행 판매전략
자동차 모델뿐만 아니라 마케팅전략도 현지화했다. 베이징현대는 지난해 하반기 신형 엘란트라 위에둥을 내놓았지만, 구형 차종을 단종하지 않고 계속 판매했다. 중국 시장이 경제 발전 단계가 서로 다른 지역이 혼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전략이었다.
신형 위에둥은 유행과 스타일에 민감한 동남부 연안의 대도시를 주타깃으로 했다. 가격도 10만위안(약 1700만원)선으로 높여 잡았다. 반면, 구형 엘란트라는 지방 대도시와 중소도시를 겨냥했다. 각 지방의 특성을 감안해 위에둥보다 1만위안이나 저렴한 9만위안(약 1530만원)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산업연구원의 조철 베이징사무소장은 “신·구형 모델을 합쳐 한해 40만대 가까이 판매할 수 있는 것이 중국 시장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중서부 내륙지역을 중심으로 딜러망을 대폭 확대한 것도 한몫했다. 베이징현대의 중국 딜러망은 2007년 말 현재 337개에서 작년 말 420개, 지난달 말에는 500개로 증가했다.
노재만 베이징현대 사장은 “중국 정부 정책과 현지화된 마케팅전략, 차질없는 생산 등 3박자가 맞아떨어져 올해 중국 시장에서 약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