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257]

조선일보
    입력 2009.12.21 02:42

    제20장 죽어 천년을 살리라

    안중근이 남긴 여섯 통의 유서를 읽고 있으면 체념으로 가라앉은 불굴의 투지와 함께 죽음을 며칠 앞둔 서른한 살 애처로운 영혼이 품었던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미 공판 투쟁 때의 그 장한 의기와 정당성의 확신은 찾아볼 수가 없고, 크고 거룩한 것을 향한 자기봉헌(自己奉獻)의 경건함도 자취가 희미하다. 대신 아침나절 잠시 풀잎 위에서 반짝였다가 사라져 가는 이슬같이 허무하고 꿈속의 꿈처럼 덧없는 삶을 되뇌며, 오직 천주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은총에만 용서와 구원을 맡기고 있다. 그 사제단은 끝내 살인죄인의 혐의를 풀어주지 않고, 용케 안중근에게 성사를 베풀어준 빌렘 신부는 그 때문에 뮈텔 주교와 그를 지지하는 조선교구 사제단에 의해 본국으로 추방되는 뒷일을 떠올리면, 무심한 필부(匹夫)도 안중근이 품고 죽어갔을 차디찬 외로움에 가슴 저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간수 지바로부터 26일 사형이 집행된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는 안중근은 25일 두 동생 정근 공근과 마지막 면회를 했다. 변호사 미즈노와 함께 입회한 미조부치 검찰관은 그날이 마지막 면회임을 들어 안중근 형제가 손을 잡고 작별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러자 안중근이 먼저 무릎을 꿇고 두 동생을 이끌어 기도부터 올렸다.

    "천주여 들어주시고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몸을 돕는 분이신 주(主)여, 이 우리의 슬픈 울음을 춤으로 바꾸소서. 내 천주여 영원히 당신을 찬미하오리다. 아멘."

    그리고 서로 손을 맞잡으며 작별의 말을 한 뒤 미리 써둔 그 여섯 통의 유서를 내놓았다. 정근과 공근이 자기들에게 남긴 것이 없음을 보고 달리 당부할 말이 없는지를 물었다.

    "여기에 말씀드렸다만 다시 한 번 너희에게 당부한다. 어머님께 평소 아들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효도 드리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이번 사건으로 크게 심려 끼친 것을 용서해 달라고 너희가 대신 빌어다오. 또 분도를 신부로 만들어 달라는 것도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빈다고 한 번 더 당부 여쭈어라. 실은 둘째아이(준생)가 중병에 걸렸다가 뜻밖으로 회생했다는 것을 듣고 그 아이를 신부가 되게 하려고 생각했으나, 몸이 약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큰아이 분도를 신부로 바치려는 것이다."

    일러스트=김지혁

    안중근이 그렇게 대답한 뒤에 다시 두 아우에게 하고 싶은 말을 보탰다.

    "정근이 너는 장래 공업에 종사하도록 해라. 한국은 아직 공업이 발달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 지금은 돈밖에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탄하지만, 어쨌든 실업을 일으켜 세우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말은 꼭 공업에만 종사하라는 것은 아니고, 식림(植林) 같은 일은 한국을 위하여 가장 필요한 일이 될 수도 있으므로 혹은 식림에 종사하여도 좋다. 결론적으로 국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일을 하라는 말이다.

    공근은 학문에 종사하며 노모와 노모가 살아계시는 고향에서 잘 모셔 주기 바란다."

    "아직 남은 토지가 많으니 불편하면 다른 곳으로 이사하여 살 터인즉 어머님을 모시는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근이 울먹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안중근이 불쑥 물었다.

    "지난번에 하얼빈에서 우덕순, 유동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찾아오라 했는데, 찾아왔느냐?"

    "부쳐 달라고 했으나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만, 사진이 오지 않는다 해도 이번에 귀국하면 시베리아 쪽으로 옮겨 살 작정인즉, 그때는 반드시 찾도록 하겠습니다."

    정근이 그렇게 대답하자 안중근이 문득 생각난 듯 받았다.

    "옮겨 산다는 게 시베리아로 정한 것이로구나. 만일 그리로 가게 되면 전에 말한 대로 장봉금으로부터 5천원을 받을 것이 있는데, 그것을 받아 동의회(同義會)에 전해라.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라 동의회의 것이다. 또 해삼위 이치권의 집에는 아직 갚지 못한 숙박비가 있는데 너희가 대신 갚아다오. 그리고 그 집에 있는 내 가방과 옷가지 및 단지 동맹 때 자른 손가락을 돌려받아라."

    "그리하겠습니다."

    두 아우가 입을 모아 그렇게 대답하자 다시 안중근이 불쑥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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