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황혼 '100년전 우리는'] [81] 미국서 출간된 이승만의 '독립정신'

조선일보
  • 권영민 서울대 교수·한국문학
    입력 2009.12.19 02:37

    1909. 8. 29.~1910. 8. 29.

    1910년 4월 2일자 황성신문 잡보란에는 '독립정신(獨立精神)의 출현'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수학하는 이승만(李承晩) 씨가 체옥(滯獄) 중에 저술한 '독립정신'이라는 책자가 근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출판되어 내외 동포 일반이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신문은 "이승만이 프린스턴대학에서 2년간 공부한 후 철학박사 학위를 얻고 가을에 귀국하여 만국청년회를 담당하게 된다"는 소식(1910.7.12.)도 전한다.

    이승만은 황해도 평산에서 1875년 태어났다. 소년기에 한학을 공부하다가 1894년 갑오경장을 계기로 과거(科擧)가 폐지되자 이듬해 서울로 올라와 20살의 늦은 나이에 배재학당에 입학한다. 이곳에서 그는 서재필(徐載弼)의 영향으로 자유 평등 민권 등 근대적 정치이념과 서구 민주주의 제도를 알게 된다.

    이승만은 배재학당 졸업 후 '매일신문' 주필 겸 사장, '제국신문' 주필로서 자유사상 보급에 필봉을 휘둘렀다. 또 서재필이 창립한 독립협회에 가담하여 정치개혁운동을 선도하게 된다. 그러나 1898년 독립협회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실시하려 한다는 혐의로 강제 해체된 뒤, 이승만은 고종 양위(讓位)사건에 연루되어 이듬해 1월 체포된다.

    맨 왼쪽 중죄수 복장이 이승만,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이상재,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안국선·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제공

    이승만은 한성감옥에서 '제국신문'의 논설을 쓰는 한편 '독립정신'을 집필한다.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위협이 높아지자 민족 독립에 대한 민중의 각성이 절실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가석(可惜)한 바는 강포한 나라가 힘을 믿고 욕심을 부려 남의 토지를 점령하며 국권을 침탈하는 폐단이 생긴지라."('독립정신' 42쪽)

    이 책은 1904년 2월 19일부터 6월 29일까지 4개월여 만에 완성됐다. 전체 51장과 후록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1~10장에서 조선이 처한 위기 상황, 독립을 보전하기 위한 백성의 역할을 제시하고, 11~25장에서 민주주의 제도와 백성의 의무, 자유와 권리 등을 설명한다. 26장부터는 국제 정세를 분석한다.

    "폴란드는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분할되어 망하였지만, 그 국민들이 마음속에 항상 조국을 잊지 않고 이를 회복하려 노력한다면 전과 같은 독립국이 될 수 있다."

    을사조약 직전에 쓴 이 책에서 이승만은 폴란드의 사례를 들어 다가올 일본의 주권침략에 대한 우리 민족의 대응자세를 주문한다. 이 책의 핵심은 '독립정신 실천 6대 강령'에 요약되어 있다. 첫째, 세계에 대해 개방해야 한다. 둘째, 새로운 문물을 자신과 나라를 보전하는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셋째, 외교를 잘해야 한다. 넷째, 나라의 주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다섯째, 도덕적 의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여섯째,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 책은 국내에서는 발간되지 못했다. 하지만 100년 전 옥중에서 다듬은 그의 '자주독립' '민주주의' 사상은 1948년 민주공화정부의 탄생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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