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어느 구청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수능 강의가 인기다. 강남 학원가의 유명 강사가 출연하면서 회원이 100만으로 불었고 지방 수험생이 더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흑자를 낸다. 관청 사업이 흑자라니 납세자부터 반가워하거니와 언론마저 사교육을 이긴 강좌라고 미담 대접한다. 관영(官營) 인터넷 과외의 번창으로 다른 민영(民營) 중소 기업이 얼굴 찌푸리는 모습은 보지 못한다.
아예 방과 후 과외방을 운영하는 지자체까지 등장했다. 우수 학생을 키우겠다는 군수님, 시장님의 갸륵한 명분이 그럴싸하지만, 그 때문에 민간 학원이 들어설 면적은 줄어든다. 세금을 더 짜내고 유지로부터 헌금을 털어내 수백억짜리 향토 장학재단을 만든 곳도 적지 않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학생에게 장학금 준다는데 어느 누가 감히 1인시위를 할 수 있을까.
시장·군수가 같은 돈으로 특급 교사를 모셔오고 후진 컴퓨터·실험 장비를 바꿔 공교육에 힘을 더 보탤 생각은 덜 한다. 그보다는 교복 차림새들의 등을 토닥이거나 장학증서를 수여하는 군수님 얼굴이 TV 화면에 5초 방영되는 쪽이 훨씬 남는 장사다.
과외도 관(官)이 하면 선(善)이고, 민(民)이 하면 단속 대상이라는 고리타분한 발상이 민간의 활력을 죽이고 생존권까지 위협한다. 주민센터가 어린이 영어교실을 열면 길 건너편 샛별 영어학원에 손님이 줄어가고, 구청 헬스센터 개장과 함께 길모퉁이 빌딩에서 에어로빅 강사가 실업자로 전락해버린다. 그런데도 선거가 닥치면 해야 할 일, 말아야 할 일을 가리지 않는 병은 더욱 도진다.
관영 댄스교실, 관영 영어교실, 관영 헬스가 100% 빈곤층에 무료 서비스한다면 시비 걸 말이 궁하다. 어디를 봐도 빈곤층 전용이 아니건만 언론은 구청장의 이색 발상을 칭송할 뿐이다.
고령 인구가 늘자 노인요양병원이 뜨는 상품이다. 내년 지방선거 때는 '관내 요양병원 조기 설립'은 필수 공약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관영이랍시고 땅값이 싼 그린벨트를 먼저 풀고 설비는 최신식으로 갖출 것이다. 이용료는 낮출 수 있는 선까지 낮춰 노부모를 격리해야 하는 아들·며느리 표를 사려고 들 것이 뻔하다.
반면 그 맞은편 산기슭에서는 민영 실버요양원이 죽어갈 것이다. 관청에 접대와 뒷돈을 제공하며 짜증나는 인·허가를 받은 후 개업해도 요양보호사들 저임금 덕분에 겨우 굴러가는 게 민간 요양원의 현실이다. 이런 길목에서 관영 경쟁자를 만나면 살아날 재간은 없다.
민간 투자자와 지자체의 장은 출발선에서 전혀 다른 총성을 듣는다. 한쪽은 총알보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죽는다는 최후통첩을 듣지만, 다른 쪽 총소리는 느긋하다. 시장·구청장은 꼭 흑자를 내야 할 부담이 없고 투자비 회수 걱정도 하지 않는다. 원가를 따지거나 배당을 신경 쓸 필요 없이 굴러들어온 세금을 지출하면 그만이다.
관청의 머릿속에는 굴비 가운데토막은 항상 자기 몫이라는 생각이 가득하다. 국정원은 산업스파이를 색출한다며 대기업과 기업인을 감시한다. 선진국에서 기업의 스파이 색출은 민간의 사업 영역이다.
스파이를 잡아주는 전문회사도 있고, 이를 사전에 방어해주는 컨설팅도 민간회사가 담당한다. 우리는 국정원이 이 사업을 독점하는 바람에 민간회사가 설 땅을 잃었다. 안보와 직접 관련 없는 분야까지 정부가 맡다 보니 인터넷 보안 사업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많은 것을 관(官)이 제공하던 시절이 있었다. 해운업·조선업·정유업을 한동안 관청이 맡았고, 그럴듯한 일자리와 중산층의 꿈이던 아파트까지 정부가 공급했었다.
하지만 21세기 세계는 국가지상주의, 관(官) 우선 사상을 거부하고 있다. 국가 주도로 인간이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유혹하던 공산국가들은 20년 전에 붕괴했다.
단지 두 가지 예외적인 현상을 보며 착각하면 곤란하다. 중국 같은 신흥국가가 국가 주도로 고도성장을 달성하고 리먼 쇼크 이래 각국이 재정 지출을 늘렸다. 이는 팽창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밀고 가는 전략이 아니면, 위기 탈출용 비상 처방일 뿐이다.
국가 주도권을 중국처럼 강화하자거나 '나라가 하는 일은 항상 옳다'는 박정희식 모델로 회귀하려는 전략은 오늘의 한국, 내일의 한국에 도무지 맞지 않는 옷이다. 대통령이 즐기는 간식을 세계화한다며 청와대가 떡볶이 브랜드를 내놓으면 동대문 시장의 떡볶이 아줌마는 어떻게 될지 공무원이라면 항상 생각해봐야 한다.
입력 2009.12.18. 22:18업데이트 2009.12.19.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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