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클래스] 강남 한복판 도산대로에 '수상한' 건물이…

  • 李善珠 TOP CLASS 편집장

    입력 : 2009.12.18 17:53 | 수정 : 2009.12.20 10:49

    서울에 서브컬처 후원하는 복합문화공간 만든 두 독일 남자
    ‘플래툰’ 공동대표 톰 부셰만, 크리스토퍼 프랑크

    <이 기사는 톱클래스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톰 부셰만(왼쪽)과 크리스토퍼 프랑크(오른쪽)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수혜자로 첫 개인전을 여는 ‘정크하우스’의 작품이 있는 곳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뭐하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 ‘NO Question’이라고 써 붙여 놓았다 한다.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97-22. 강남 한복판인 도산대로 사거리 근처에 올해 봄, ‘수상한’ 건물이 들어섰다. 화물 컨테이너를 쌓아서 국방색을 칠한 네모난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커피와 독일 맥주, 독일식 돈가스인 슈니첼, 소시지 등을 파는 식당 겸 바가 나타난다. 탁자와 의자를 학생식당에서 빌려온 듯한, 장식이 거의 없이 단출한 공간이다.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수상’하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뒤섞여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아티스트로 보이는 사람들이 작업복 차림으로 오간다. 도로를 향해 있는 4개의 창가 컨테이너마다 독특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주말이면 종종 파티가 열려 사람들로 꽉 차는 이곳은 요즘 강남에서도 ‘인기 장소’로 뜨고 있다.
     
      이 수상한 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를 만든 독일인, 톰 부셰만과 크리스토퍼 프랑크 두 사람을 만났다. 이들은 왜, 서울에, 이런 공간을 만들었을까? 이 공간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의 정체부터 밝혀 내야 했다.
     
      “독일에서 우리가 플래툰을 세운 게 2000년이에요. 저(톰 부셰만)와 크리스토퍼 모두 10년 가까이 광고 일을 하면서 지쳐 있었죠. ‘이 자동차를 가져야 행복해질 거예요’ ‘이 화장품을 쓰면 남편한테 사랑받을 거예요’ 같은 광고는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건 소비자에게 허상(虛想)을 심어 주는 거짓말이자 사기니까요. 요즘 소비자들은 그런 문구에 쉽게 현혹되지 않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만나 서로 정보를 나누며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샅샅이 해부하니까요. 아무리 유명한 기업이나 브랜드도 사이버 공간에서는 평등한 존재가 되지요. 인터넷은 기업체와 소비자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일방통행의 커뮤니케이션은 통하지 않지요. 우린 이런 환경에 힘입어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개념의 광고-마케팅 회사를 만들자는 데 의기투합했습니다.”
     

      마케팅 전문가(톰), 그래픽 디자이너(크리스토퍼)로 광고-마케팅 일을 하던 두 사람은 당시 30대 초반이었다. 이들은 이제까지 자신들이 해 오던 일에 반하는 계획을 세웠다. “사람들에게 헛된 환상을 심어 주는 대신 현실을 보게 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하자”며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작은 부대’(smallest independently operating unit)라는 취지로 ‘플래툰’을 만들었다. 자본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작가정신이 살아 있는 영화를 만드는 ‘독립영화’처럼, 새로운 형태의 독립 광고-마케팅 회사를 꿈꾼 것이다.
     
      “군대 조직인 소대처럼 기동성 있게 움직이면서 기존 관습이나 문화를 저격하자는 거지요(톰 부셰만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총 쏘는 시늉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만드는 건물도, 입는 옷도 군인색이에요. 도심의 비어 있는 땅에 컨테이너로 건물을 짓는 것도 그 이유에서입니다. 컨테이너는 언제든 뜯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으니까 ‘문화 게릴라’처럼 활동을 벌일 수 있지요. 이곳도 원래 주차장으로 쓰던 땅이었어요.”
     
      - 광고주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당신들한테 일을 맡기는 클라이언트가 있나요?
     
      “이제까지 해 오던 방식에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것을 찾는 광고주들이 보통 우리와 손을 잡지요. 우리 클라이언트로 아디다스 독일, 휴고 보스, BMW, 아디다스 한국 등이 있어요. 뜻이 맞는 정치단체와도 함께 일해요. 중간에라도 뜻이 맞지 않으면 일을 그만둡니다. 기존 광고 형식 외에 UCC, 옥외광고, 단편영화, 거리 이벤트 등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허상(虛想)을 만드는 광고 대신 현실에 대해 묻고 생각하게 하는 예술적인 방식을 시도하죠
     
      이들은 일방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대신, 질문을 던져서 소비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예술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도입했다. 이들이 찾은 창조력의 원천은 서브컬처. 기존 예술의 영역에 편입하기 어려운 그래피티, 비디오아트, 거리 예술, 클럽 문화 등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문화’를 적극 후원한다.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을 후원하고, 그들이 활동할 공간을 넓히고 있는 것. 이들은 “급진적이고(radical) 새로운 아티스트를 주로 발굴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베를린과 서울에 ‘플래툰 쿤스트할레’를 세웠다.
     
      ‘쿤스트할레’는 독일어로 아트홀이라, ‘플래툰 쿤스트할레’는 플래툰이 만든 아트홀이란 뜻이다. 광고-마케팅 회사인 플래툰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서브컬처를 후원하는 쿤스트할레는 한몸과 같은 존재다. 그것은 서울에 두 번째로 둥지를 튼 ‘플래툰 쿤스트할레’ 건물에서도 느낄 수 있다.
     





    레스토랑이자 바인 1층과 아티스트 작업실, 도서관이 있는 2층.

      이 건물의 1층은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레스토랑이자 바이자 전시 공간인데, 때에 따라 영화 감상,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워크숍 등 각종 이벤트 공간으로 변신한다. 2층에는 아티스트들에게 무료로 내주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작업실 네 곳이 들어가 있다. 높이 240cm, 폭 210cm, 길이 570cm짜리 컨테이너에서 6개월 동안 작업에 몰두한 아티스트들은 레지던스 기간이 끝날 때 이곳에서 개인전을 연다. 작품 생산과 전시가 한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원스톱 예술 공간’인 셈이다. 첫 번째 입주자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인 박수미 씨,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서울거리 아티스트로 현대 도시를 소재로 독특한 작업을 하는 정크하우스, 음반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는 매거진 킹. 정크하우스가 11월 4일부터 14일까지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첫 개인전을 연다.
     
      3층에는 플래툰의 사무실이 있는데, 이곳에서 플래툰의 공동대표인 두 사람을 만났다. 두 사람은 베를린과 서울 사무실을 6개월씩 번갈아 가며 근무하는데, 마침 근무 교대기간이라 모처럼 한사무실에 있다고 했다. 이들은 기자를 보자마자 “컨테이너로 만든, 이 지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건물이 ‘강남구 아름다운 건축물’에 뽑혔다”면서 상패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그들에게 왜 두 번째 ‘플래툰 쿤스트할레’를 서울에 지었는지 물었다.
     
      “두 번째 오피스를 아시아에 세우기 위해 도쿄홍콩, 상하이 등지를 돌아보며 다녔지요. 새롭고 다양한 문화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일본은 이미 자리 잡은 반면, 중국은 뒤처져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지금, 변화의 중심에 있어 그들을 잇는 ‘다리’가 되기에 적당했습니다. 게다가 아시아 모든 나라 사람들이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가요에 열광하면서 한국이 아시아 문화에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해요. 서울을 아시아의 거점으로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세 번째 플래툰 쿤스트할레는 아메리카 대륙의 거점으로 멕시코시티에 세울 생각이에요. 그 다음 모스크바, 텔아비브 등 세계 곳곳으로 확산해 나갈 계획이지요.”
     

      서브컬처를 지향하면서 홍대 앞이 아닌, 강남 한복판에 건물을 세운 것에 대해 이들은 “럭셔리 브랜드 매장과 상업 화랑들이 밀집되어 있는 이곳에서 그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플래툰과 네트워크를 갖고있는 전 세계 아티스트는 3500여 명. 그래픽디자이너, 사진작가, 조각가, 배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지원해 오는데, 열린 마음, 실력, 변화에 대한 열망 등을 기준으로 심사해서 뽑는다고 한다.
     
      이들의 꿈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다양한 국적과 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소통하면서 궁극적으로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지나친 이상주의자일까?
     
      “우리의 목표를 보면 이상주의자(idealist)이지만, 전문성을 가지고 일을 해 나간다는 면에서는 현실주의자(realist)예요.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는 낙천주의자(optimist)이기도 하지요.”
     
      분단과 통일의 역사를 겪은 독일인이기에 한국에 대해 더 관심이 많다는 이들은 한국 사람에게 쓴소리도 했다.
     
      “한국 사람들은 빨리 돈을 버는 데만 관심이 쏠려 있는 것 같아요. 남북통일에 대해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게 아니냐?’며 꺼리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사진 : 김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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