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광화문광장 '쌍둥이 빌딩'… 똑같게 지어진 사연은?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입력 2009.12.19 02:41 | 수정 2009.12.22 05:28

    왼쪽은 '정부청사'로 61년 완공 오른쪽은 '美 경제협조처' 건물
    美서 설계할때 옆건물도 같게 해

    현재의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자리에 들어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내년 1월까지 건립 기본계획을 수립한 뒤 2012년까지 공사를 마칠 계획이다. (본지 10월 21일자 보도)

    서울 한복판 광화문광장 동쪽의 문화체육관광부 건물과 미국 대사관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십상이다. 전혀 다른 성격의 건물인데 마치 쌍둥이처럼 외관이 똑같기 때문이다.

    이 건물들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지은 걸까? 김정동(金晶東) 목원대 건축학부 교수는 최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기본계획' 심포지엄의 발제강연을 통해 "두 건물은 반드시 보존해야 할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들어서게 되는 서울 광화문광장 동쪽 문화체육관광부 청사(왼쪽)와 미국 대사관 건물(오른쪽)은 성격이 다른 건물인데도 색깔만 다를 뿐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다. 이 두 건물과 그 자리는 우리 현대사의 온갖 사연들이 농축돼 있는 곳이다. /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무슨 얘길까? 조선시대 지금의 세종로 좌우에는 육조(六曹)가 밀집해 있었다. 문화부 자리에는 이조(吏曹) 건물이 있었다. 미 대사관 자리는 서울시청 격인 한성부(漢城府)였다.

    일제 강점기 이 건물들이 헐렸다. 1915년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분실이 들어섰다. 1921년에는 경찰관 강습소로 바뀌었다. 이 건물은 6·25 전쟁 때 파괴됐는데 1950년대 내내 공터로 남아 있었다.

    김정동 교수는 "당시 이곳에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도 참관한 연날리기 대회가 열렸는데 흙바닥 위에 가마니를 깔고 행사를 치렀다"고 말했다. 이곳에 새 건물 두 채를 짓기 시작한 것은 1959년의 일이었다.

    전쟁 직후 정부청사였던 중앙청(옛 총독부 건물)은 내부가 불타고 부서져 당장 활용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1954년 새 정부청사 신축계획이 마련됐는데 그 자리가 바로 이 공터였다.

    그런데 돈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정부청사 건물을 세울 것인가? 결국 공사비는 대외원조자금으로 해결했다. 설계와 시공은 각각 미국의 태평양건축 엔지니어(PA&E)와 빈넬(Vinnel)사가 맡았다.

    왼쪽(현 문화부)은 정부청사, 오른쪽(현 미대사관)은 주한미국 경제협조처(USOM) 건물로서 지어졌다. 왜 두 건물은 똑같은 모습일까? 김 교수는 "미국이 자기들 건물을 설계하는 김에 옆 건물 설계도 같이 한 것"이라고 했다.

    정작 이 두 건물의 건축을 주도한 사람이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 이용재(李龍在·1897~1974)였다는 사실은 기억될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이용재야말로 잊혀진 한국 건축계의 선구자였다"고 말했다.

    함북 성진 출신으로 3·1운동 때 옥고를 치른 이용재는 일본 도쿄(東京)고등공업학교(현 도쿄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광복 뒤 미 군정청 건축서장으로 일했다. 대천해수욕장 호텔, 충주비료공장, 동래관광호텔의 건축에도 참여했다.

    그는 정부청사·USOM '쌍둥이 건물'의 건축 당시 빈넬사 주임기사였다. 설계·시공·감리가 명확히 나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이용재는 도면 몇 장만 가지고 현장에서 실제로 건물을 짓는 역할을 맡았다.

    지하 없는 지상 8층짜리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1961년 이렇게 완공됐다. 김 교수는 "두 건물은 1950년대 세계 건축계를 지배하던 양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1958년 프랑스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 등장하는 사건의 주 무대가 바로 이런 양식의 건물이라는 것이다.

    슬래브(slab·콘크리트를 부어서 한 장의 판처럼 만든 구조물) 구조로 된 이 건물에는 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들보가 없다. 이 때문에 층고가 낮아 보이면서 날렵하고 모던한 인상을 준다.

    이곳은 또한 '한국인의 손으로 지어진 최초의 정부청사 건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건물 공사 중에 5·16이 일어났고 1961년 6월 19일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왼쪽 건물에 먼저 둥지를 틀었다.

    1963년 경제기획원이 들어선 이후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비롯한 정책들이 수립된 현장이다. 1986년에는 문화공보부(문화부의 전신) 청사로 바뀌었다. USOM이 쓰던 오른쪽 건물에는 1968년부터 미 대사관이 들어섰다.

    김 교수는 "최근 문화부 청사 자리에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을 세우기로 결정하면서 기존 건물을 헐고 다시 짓자는 말이 나와 깜짝 놀랐다"며 "원래 모습을 훼손하는 리모델링도 곤란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이 건물은 건립 50주년이 되는 2011년부터는 근대문화재로 등록될 자격도 갖추게 된다. 문화부 관계자는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선에서 놔둔 채 박물관을 위해 증축 공사를 하려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건립은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이 작년 8월 "60년의 짧은 기간에 근대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기적의 역사를 후손들이 배우고 민족적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뒤 추진되는 사업이다.
    김정동 목원대 건축학부 교수가 광화문 쌍둥이 빌딩을 존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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