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비속어에 점령당한 10대들의 언어

조선일보
  • 박시영 기자
    입력 2009.12.17 03:14

    "친구끼린데 뭐 어때요" 여학생도 거침없이 욕설
    '안습'·'솔까말'·'안물'… 정체불명 단어도 번져

    11일 오후 7시. 서울 구로동 L패스트푸드점. 3명의 여중생이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친 ㄴ아, 쪽 팔리지도 않냐?" "ㅈ나 짜증 나. 그 새ㄲ 미친 거 아냐?"

    'ㅈ나'는 남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비속어에서 나온 말이지만 여중생들 입에선 이 단어가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단어의 뜻을 아느냐고 묻자 이모(16)양은 "그런 의미로 사용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양은 학급 석차 5등 안에 드는 '모범생'이었다.

    이들이 대화를 나누며 사용한 욕이나 비속어의 종류는 'ㅆ발', 'ㅆ년' 등 다양했다. '안습', '솔까말', '안물' 등 정체불명의 단어도 연방 흘러나왔다. '안구(眼球)에 습기 차다'의 줄임말인 '안습'은 '눈물 난다'는 뜻이고, '솔까말'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안물'은 '안 물었어'의 줄임말이다. 모두 인터넷 채팅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기자가 약 2시간에 걸쳐 이곳을 찾은 20명의 청소년(남 12명, 여 8명)들의 대화를 관찰한 결과, 1명을 제외한 19명의 학생들이 이와 같은 욕이나 비속어, 사이버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초등학생도 예외는 아니며 남녀를 구분하지도 않는다. 10대 언어가 욕과 비속어, 사이버 언어에 '점령'당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9일 오후 5시쯤 서울 마포구의 한 PC방. S초등학교 6학년 김모(13)군과 서모(13)군이 카레이서 경주 게임에 한창이었다.

    "아 씨ㅂ, 오늘 게임 ㅈ나 안 되네." "ㅈ랄. 네가 언제 제대로 했냐. ㅂ신아."

    듣기 민망한 거친 욕과 비속어가 초등학생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졌다. 욕설을 지적하자 김군은 "친구들끼리는 이런 말을 자주 쓰는데 왜 문제예요"라고 반문했다. 서군은 "친구니까 욕할 수 있고 친한 친구끼리는 욕을 더 자주 쓴다"고 했다.

    한국교총이 지난 4월 전국 초·중·고 교사 5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교사의 75%가 "학생들이 대화에서 쓰는 문장 중 욕설·비속어가 들어간 것이 절반은 된다"고 답했다. 학생들 대화에 섞인 욕설·비속어 사용 비율이 50~70%에 달한다는 교사들도 20%나 됐고, 교사의 92%는 과거에 비해 학생들 욕설이나 비속어 사용 빈도가 높아졌다고 답했다.

    지난 5월 파주시가 관내 초·중·고교생 1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욕 사용실태' 설문조사에서도 학생의 88%가 "평소 욕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고, 30%는 대화의 절반 이상에 욕을 쓴다고 대답했다.

    서울 Y고 교사 김모(35)씨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나 못하는 아이나 가릴 것 없이 욕이나 비속어를 자주 쓴다"며 "자기들만의 은어(隱語)로 교사에게 욕을 하거나 교사를 비하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남궁기 연세의료원 정신과 교수는 "스트레스를 풀거나 또래 집단의 동질감을 유지하기 위해 자주 쓰는 것으로 보인다"며 "악의없는 비속어 사용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정화될 수 있지만 지나친 남용은 언어습관을 해치거나 정서불안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일산의 A중학교 교사 이모(53)씨는 최근 학생들이 수업을 듣지 않고 몰래 주고받던 메모 쪽지를 발견했다. 하지만 내용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사전에 나오는 단어는 거의 없고 이뭐병(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ㄷㅊ(닥쳐),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흠좀무(흠 그건 좀 무서운데) 등 사이버 언어들만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교사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몰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적발해도 도통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학생들에게 해독을 요청해야 할 정도"라고 했다.

    이러한 줄임말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 만들어지고 퍼져 나간다.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는 채팅을 하거나 댓글을 달 때 욕이나 성적인 표현을 금칙어로 지정해 쓸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를 피해 글을 쓰려는 네티즌들은 줄임말, 변형된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제한된 바이트 내에 많은 표현을 담아내기 위해 다양한 축약어를 만들어냈다. 또 지상파 TV의 예능 프로그램이나 케이블 TV의 오락 프로그램도 저속한 은어를 대량 생산해내며 10대들을 '중독'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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