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우리동네 옛이야기] [17] 서대문구 현저동(峴底洞)

조선일보
  • 김진명 기자
  • 이철원
    입력 2009.12.15 02:56 | 수정 2010.02.09 11:23

    무악재 아래 '고개 밑' 에서 비롯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여긴 서울에서도 문밖이란다… 느이 오래비 성공할 때까지만 여기서 고생하면 우리도 여봐란듯이 문안에 들어가 살 수 있을 거야."

    고향을 떠나 막 서울에 도착한 딸에게 엄마가 한 말이다. 소설가 박완서의 작품 '엄마의 말뚝'의 한 장면으로, 배경이 되는 '문밖'은 지금의 서대문구 현저동(峴底洞)이다.

    '문밖'이란 표현 그대로, 현저동은 조선시대 성외(城外)에 속했다. '현저'란 지명은 '고개 밑'이란 뜻으로, 인왕산과 안산(鞍山)을 잇는 무악재 아래에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중국 사신의 숙소인 모화관이 여기 있어, 조선 말기까지 '모화현'(慕華峴)으로도 불렸다.

    모화관은 조선 말기인 1897년 서재필 같은 독립협회 인사들에 의해 '독립관'(獨立館)으로 개축돼 독립협회 회관으로 쓰였다. 청나라 사신을 맞아들이던 영은문(迎恩門) 자리에는 '독립문'이 들어섰다.

    아이러니하게도 독립관이 있던 현저동은 일제시대 민족수난의 비극적 현장이 됐다.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적 시설을 갖춘 감옥인 일명 '서대문형무소'가 1908년 이곳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를 비롯한 숱한 독립운동가들이 여기서 고통받았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말 독립문·서대문형무소 부근을 정비해 새로운 '서대문독립공원'으로 개방했다. 현저동 일대도 재개발이 진행 중이니, 옛 모습은 박완서 소설로나 더듬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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