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親日)명단'서 빠진 여운형, 친일행적 또 나와

조선일보
  • 이한수 기자
    입력 2009.12.15 02:58

    '친일규명委' 조사부실… 편향성 속속 드러나

    지난달 '친일(親日)인명사전'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성대경)의 조사 부실과 편향성을 보여주는 자료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여운형의 진술서와 친일적 내용의 한시를 보도한 ‘대동신문’ 1946년 2월 17일자./정진석 교수 제공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한국언론사)는 여운형이 일본인 검사에게 제출한 전향서와 친일적인 내용을 담은 그의 한시(漢詩)가 실린 〈대동신문(大東新聞)〉 1946년 2월 10일·17일·18일자, 여운형을 '친일파'로 분류한 광복 후 미군사령부 정보보고서와 조선공산당 문서 등의 자료를 14일 공개했다.

    〈대동신문〉의 여운형 진술서는 1943년 2월 6일 일본인 검사 스기모토(杉本寬一)에게 제출된 것으로 "나는 조선민족의 관념을 완전히 청산하고 적신(赤身)으로 되여서 총독의 명령에 복종하야 당국에 협력하야서 국가를 위하야 활동하랴고 생각함으로서 좌(左)에 맹세합니다"라고 썼다. 진술서 끝에는 "포연탄우 속에 문필도 보답하고(砲煙彈雨又經筆)/나라 위해 젊은 목숨 바치기를 청하네(爲國請纓捨一身)/천억(千億·일본이 중심이 된 동양)이 결성하여 공영을 이루는 날(千億結成共榮日)/태평양 물에 전쟁의 티끌을 씻으리(太平洋水洗戰塵)"라는 자작 한시를 덧붙였다.

    또 일제 패망 후 서울에 진주한 미군사령부 정보참모부는 1945년 9월 12일자로 작성한 비밀문서 〈G-2 Periodic Report〉에서 여운형은 "한국인들 사이에 친일파로 널리 알려진 정치가"이며 "조선총독으로부터 거금 (아마 2000만엔)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1950년 11월 유엔군이 노획한 조선공산당 문서도 그를 "변명할 이유가 없는 친일분자"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성대경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은 "여운형의 친일 자료는 단 한 건뿐 이어서 그를 조사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운형이 1944년 9월 일제 협력단체인 국민동원총진회의 '참여' 직책을 맡았고 조선대아세아협회 상담역, 조선교화단체연합회 찬조연사 등에 이름을 올렸던 사실이 확인된 데 이어 다시 그의 친일 활동을 보여주는 추가 자료가 나온 것이다. 이들 자료는 국립도서관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도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규명위가 관심을 두지 않았거나 일부러 무시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