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IT(정보 기술)업계 화제는 KT가 내놓은 아이폰이다. KT가 아이폰 서비스를 시작한 지 열흘 만에 10만대가 팔렸고, 앞으로 50만대를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할 것 없이 모두 아이폰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아이폰이 뭐기에 이 난리가 났을까. 아이폰을 가지려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전화를 개통하려면 매뉴얼을 보면서 아이튠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부터 등록해야 한다. 그리고 KT 상담원과 통화하면서 전화기 사용방법을 하나하나 배워야 한다.
여기다 가격도 비싸다. 일정액(최고 월 9만5000원)을 넘어서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다운받다 보면 어마어마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한번 구입하면 꼼짝없이 24개월은 써야 한다. 그전에 해지하면 수십만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고장 나면 부품을 교환하는 게 아니라 통째로 바꿔야 한다. 그것도 새 휴대폰이 아닌 새것처럼 수리한 중고품을 준다. 배터리 교환이 불가능해서 언제나 충전기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휴대폰을 전화를 걸고 받거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용도로 사용하는 분에게는 아이폰을 권하고 싶지 않다. 문자 입력방식이 삼성전자나 LG전자 제품과 달라 불편하다.
그러나 아이폰에는 이 모든 불편함을 싹 잊어버리게 하는 매력이 있다. 아이폰은 컴퓨터다. 우리가 컴퓨터 웹사이트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앱스토어라고 불리는 콘텐츠 창고에는 수만 가지 프로그램들이 즐비하다. 예컨대 서울시 버스 노선도를 다운받으면 어느 정류장에서 몇번 버스가 몇분 뒤에 도착할지 알 수 있다. 자신이 찍은 동영상을 편집해서 친구 이메일로 전송도 가능하다. 아이폰에 한번 맛 들이면 중독성이 심해서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을 정도다.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긴다. 한국 IT 기술이 세계 최고라는데, 왜 삼성전자는 아이폰에 필적할 만한 스마트폰을 만들지 못하고, SK텔레콤이나 LG텔레콤은 아이폰 서비스를 하지 않는 것일까?
삼성전자는 휴대폰 제조 기술에서는 세계 최고다. 아이폰을 위탁생산하는 대만 폭스콘 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모바일이다. 윈도 모바일을 중학생이라고 하면, 아이폰 소프트웨어는 대학생이다. 휴대폰 스크린을 터치했을 때 아이폰 화면이 움직이는 속도가 빠른 것도 바로 소프트웨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LG텔레콤(CDMA)은 기술적으로 아이폰(W-CDMA)과 방식이 달라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가능한 SK텔레콤은 아이폰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아이폰으로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폰 앱스토어를 방문, 프로그램을 다운받으면 정보이용료 중 애플이 30%를 받는다. 나머지는 프로그램 제공자가 갖는다. 기존에는 애플의 30%가 SK텔레콤 같은 통신사업자의 몫이었다.
항상 '갑'의 입장에서 휴대폰 제조업체와 콘텐츠 제공업체를 상대하던 SK텔레콤으로서는 애플이 제시한 조건으로 아이폰을 구입하는 것은 돈도 잃고 자존심도 다치는 일이다.
실제로 SK텔레콤은 아이폰 도입 검토 테스크포스팀 명칭을 '백설공주'라고 지었다. SK텔레콤에는 아이폰이 독사과였기 때문이다.
아이폰은 좋은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아이폰이 한국 IT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입력 2009.12.14. 01:02업데이트 2009.12.1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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