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이 주일의 한국인] "천재의 적(敵) 사춘기…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조선일보
  • 정병선 기자
    입력 2009.12.12 03:06 | 수정 2009.12.12 15:06

    천재로 태어났지만 부담주지 말아야… 어른처럼 생각하는데 경험은 없어
    하고 싶은 공부해야 능력 발휘돼

    천재는 지능지수(IQ) 150 이상인 영재(英才) 중 영재를 말한다. 그런 천재들이 왜 한순간 사라지는 걸까? 그 번득이던 능력은 어디로 간 것일까? 최근 천재소년 송유근(12) 군을 계기로 천재의 '적(敵)'이 실체를 벗고 있다.

    바로 사춘기(思春期)다. 대전 천문연구원에서 최연소 석사학위 준비를 하고 있는 송군의 경우 일반인보다 더 사춘기에 민감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과(過)흥분성'으로, 보통 사람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대전천문연구원에서 공부하는 송유근
    송군이 2007년 인하대에 입학할 때였다. 당시 학교측은 '송유근 위원회'를 구성했다. 7명의 교수로 이뤄진 위원회는 그의 학교 생활 적응을 돕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대학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송군은 2년 만에 자퇴했다.

    천문연구원도 '송유근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교수 3~4명이 한 팀으로, 이 가운데 한국국방연구원(KIDA) 최재동 대령에게 수학 교육을 맡기고 있다. 박석재 원장은 "팀의 목적은 송군의 능력을 최대한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5세로 서울대 최연소 합격자 기록을 갈아치운 이수홍군과 재작년 14세로 국내 IT명문 한국정보통신대학교에 입학한 고병현군은 다행히 대학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수리과학부 1학년인 이군은 지난달 전국대학생 수학경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탔다. 그는 10세 때 서울교대 영재교육원에 입학해 4~5학년 때 영재 올림피아드를 2연패 했고 6학년 때 대학 수준의 수학 실력을 보였다. 중1 때는 고교수학대회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그의 목표는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이다.

    1 서울대 최연소 합격자 이수홍 2 14세에 한국정보통신대학교에 입학한 고병현
    고군 역시 초등학교 졸업 후 1년7개월 동안 홈스쿨링으로 고교 물리, 화학, 생물을 마스터했다. 그는 2006년 한국물리올림피아드 중학생부 금상, 한국수학올림피아드 중등부 은상을 차지했다. 이들은 아직 사춘기 징후가 뚜렷하지 않지만 주변의 관심은 온통 "사춘기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고 한다.

    한국정보통신대학은 고군을 위해 학사과정 3년, 석사 및 박사과정 각각 1년6개월씩인 최소 수업 연한을 통한 집중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이 코스를 통과하면 고군을 최연소 교수로 육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수홍군의 어머니 허종숙(47)씨는 "남들보다 빨리 학습 과정을 마쳐 걱정했지만 학교에서 잘 지내 한시름 놓고 있다"며 "유학도 생각했지만 어린 나이에 외국 생활에 대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참았다"고 말했다.

    15개 언어를 구사하며 언어 영재로 떠오른 9세 김재형군 부모도 앞선 사례들을 주시하고 있다. 대전시 변동에 살고 있는 김군은 혼자 한글을 터득하고 책만으로 언어를 독파했다. 그는 3세 때 영재 판정을 받은 뒤 1주일에 세 번 KAIST에서 영재수업을 받고 있다.

    천재성의 '실종'에 대해 송군을 지도한 인하대 박제남 교수는 "영재는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때 길러지는 것이지만 변질되는 순간 영재성이 발휘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 최초의 천재는 김웅용씨다. 김씨는 1980년판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 지능지수 보유자로 기재됐다. 4세에 미적분을 푼 그의 IQ는 210이었다. 4~7세까지 한양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 뒤 8세 때 미국항공우주국(NASA) 초청으로 유학을 한 뒤 1974년부터 5년 동안 NASA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랬던 그가 16세 때 귀국해 검정고시를 통해 충북대에 입학하자 세상은 그것을 '천재의 몰락'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사춘기 즈음에 심각한 정신적 혼란을 겪게 됐다고 한다. 지금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이겨냈을 수 있었겠지만 당시로선 특별 배려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2006년 충북개발공사에 입사해 현재 단지조성팀장이다.

    국악신동 유태평양 / 조선일보 DB
    또 한 명의 천재 유태평양(17)군은 1998년 10월 6세 나이로 3시간에 달하는 판소리 '흥부가' 완창 공연을 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국악계에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국악신동 1호라는 호평을 받으면서 꾸준히 성장했다.

    200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4년 동안 유학하면서 아프리카 타악기를 공부하고 온 뒤 국악과 접목해 꾸준한 천재성을 입증하고 있다. 전통예술고등학교 2학년 재학중인 그는 사춘기를 무난히 극복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영재교육 역사가 미천하다. 영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거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천재가 태어났다는 사실만 부각되고 차후 교육이 미진한 것이 사실이다.

    영재들이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영재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학교, 가정, 사회가 시스템처럼 움직여야 하는데도 이런 과정이 없을 경우 천재들은 우울증이나 자살 등에 이를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교육개발원(KEDI) 영재교육발센터 김영아 박사는 "사춘기가 유독 예민한 게 영재들의 특성 가운데 하나"라며 "영재들은 어른처럼 사고하지만 실제론 경험 못 한 분야가 많다"고 했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고교 중퇴생 가운데 10~20%가 검증받은 영재 범위에 속한다고 한다. 또 영재 가운데 15~40%는 학교에서 실패하거나 미성취 상태로 영재성을 잃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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