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246]

조선일보
    입력 2009.12.04 02:37

    제20장 죽어 천 년을 살리라

    '피고 안중근은 이토 공을 살해함으로써 자국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하나, 이 사건에 의해 한국의 국위가 선양되고, 국권 회복이 진일보했다고는 할 수 없다. 본인은 피고 특히 안중근과 우덕순의 생각에 의심이 간다. 피고 안중근은 삼 년 전에 진남포를 떠났다. 고향을 떠나기 전에는 석탄상을 경영했지만 실패했으며, 고향에 있기 거북하여 처자와 형제를 버리고 북부 한국 또는 러시아령 등지로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거기서 그는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갈 직업이 없었다. 처음에는 한국인에 대한 교육사업을 하려 했으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동조자도 없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과격파와 어울리게 되어 나중에 의병에 투신했는데, 이도 역시 오합지졸이어서 패배로 끝을 맺었다.

    작년 음력 4월 초순 그의 두 동생에게 보낸 서신에, 가족을 대할 면목이 없어서인지 "작년에 유럽을 유람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돌아왔는데, 그 일 중에 다시 파리를 거쳐 로마로 갈 생각이다"라고 하며 마치 개선이라도 한 것처럼 썼다. 이 유럽행에 대한 서신의 내용도 사실무근임은 피고가 자인하는 바이며, 두 동생 역시 형이 가족을 대할 면목이 없어서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에 하얼빈으로 올 때, 여비가 부족하여 국가를 위한 일이라 칭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석산으로부터 백루블을 강탈했다고 하는데, 그 말대로라면 방랑생활 중 같은 수법으로 양민들에게 국가를 위한 일이라 칭하여 강탈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피고는 형제 처자와 오랜 친구들에게 보통의 수단으로는 면목이 없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그 위신을 세우기 위해 공연히 대사를 기도함에 이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치는 않더라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정치와 국가라는 이름은 크고도 아름다우며 사람의 동정을 끌 만하다. 정치범과 비슷하지만 결코 같지 않은 이런 살인범은 종종 극도의 실의와 영락에서 생겨난다.'

    일러스트=김지혁

    미조부치는 그렇게 안중근이 정치범이 아님을 주장하고, 이어 근년에 있었던 암살 사건을 개괄하였다. 갑신정변에서 개화파가 민영익을 찌른 일부터 한국 내의 친일파들을 노린 여러 암살 기도를 거쳐 마지막으로 장인환이 친일 미국인 스티븐슨을 찔러 죽인 일까지 열거하더니 논고의 결론으로 다가섰다.

    '그런데 이들 범인 가운데 한 사람도 중형을 받은 사람이 없고, 심지어 아직 범인을 밝히지 못한 사건도 있다. 이런 까닭에 불령도배(不逞徒輩)는 살인 사건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고, 때와 장소와 방법에 따라서는 발각되지 않고 처벌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발각돼도 중형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운이 좋으면 (김옥균을 죽인 홍종우처럼) 상이나 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감상을 갖기에 이른 것이다. 이번 안중근 등의 이토 공 살해도 이와 같은 전례에 따라 저지른 것으로, 특히 스티븐스를 살해한 장인환이 유기(有期) 25년의 금고형(禁錮刑)을 받는데 그쳤다는 것은 안중근 등이 이미 알고 있는 일로 (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작년에 이재명이 이완용을 죽이려다 미수에 그친 것이 안중근을 본보기로 한 것이라 함은, 그가 안중근을 친구라고 주장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자명한 것이다.

    이와 같이 사이비 정치범에 유능한 사람의 생명이 파괴되는 것은 사람의 도리에 비추어보더라도 크나큰 불상사이다. 따라서 국법이 존재하는 이상 형벌의 응보적(應報的)인 본질을 발휘하여 본건이 가장 흉악한 사건임을 세상에 알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따라서 본 검찰관의 구형은 첫째 안중근에 대해서는 사형, 둘째 우덕순과 조도선에 대해서는 예비의 극형 즉 징역 2년, 셋째 유동하는 본 형을 3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하고, 종범(從犯)의 감형 규정에 따라 형기 절반을 감등하여 1년 6개월 이상이되, 다시 정상작량(情狀酌量)의 여지가 있으므로 최단기인 징역 1년 6개월의 언도가 있기를 바란다.'

    우덕순은 스스로 공범임을 자백하였으나, 조도선과 유동하는 안중근과 미리 말을 맞춘 대로 버텨 무죄나 고의 없는 방조로 빠져나오려 했는데도 끝내 살인예비와 종범의 혐의를 벗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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