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규명위는 관련 법안 제정부터 출범·활동 과정에 이르기까지 편향적 역사관을 지닌 정권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무리하게 추진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우리 사회에서 느닷없이 '친일파 청산'이 이슈가 된 것은 김대중 정권 시절인 지난 2002년 2월 김희선 당시 민주당 의원이 대표로 있던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이 '친일반민족 행위자'라며 708명의 명단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이 명단은 당초 함께 선정 작업을 했던 광복회가 작성한 명단 692명 이외에 '민족정기 모임'이 자의적으로 16명을 추가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빚었다. 이들이 추가한 16명은 여성계의 고황경·김활란·모윤숙·박인덕·송금선·황신덕, 문화예술계의 김은호·심형구·현제명·홍난파·이능화·정만조, 언론계의 김성수·방응모, 종교계의 권상노, 장덕수 등이었다.

이에 대해 윤경빈 당시 광복회장은 본지 인터뷰(2002년 3월1일자)에서 "'민족정기모임'이 추가한 명단은 광복회와는 관련 없다. 그분들은 우리도 심사했는데, 안 넣는게 좋겠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해방 직후 반민특위(反民特委)의 조사관으로 설립부터 해체까지 지켜봤고, 광복회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한 이원용씨(2002년 6월 작고)는 본지 인터뷰(2002년 3월4일자)에서 "광복회에서 16명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반민특위의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반민특위)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친일파 심판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반민특위 조사관이었던 이원용씨가 일부 정치인들이 추가한 친일파 명단이 반민특위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 본지 2002년 3월 4일자 인터뷰 기사.

이어 노무현 정권 들어 김희선 의원이 발의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2004년 5월 국회를 통과했고, 2005년 5월 이 법에 따라 '친일규명위'가 출범했다.

장관급인 위원장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관에 큰 영향을 미친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선임됐고, 사무처장에는 대표적인 친노(親盧)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출신인 정운현씨가 임명됐다.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11명은 대통령(4명), 국회(4명), 대법원장(3명)이 추천했기 때문에 당시 정부·여당과 가까운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한나라당 추천으로 활동한 한 위원은 "토론이나 표결을 하게 되면 늘 9대 2, 또는 8대 3으로 나뉘었다"고 말했다.

친일규명위가 27일 발표한 명단에는 2002년 민족정기모임이 추가한 16명 가운데 황신덕과 행정소송으로 기재가 유보된 홍난파를 제외한 14명이 포함됐다. 국가기관이 광복 직후 반민족행위 실태를 가장 잘 알았던 반민특위와 그 기준을 이어받은 광복회의 판단마저 짓밟은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사설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뿌리에서 허물어 보겠다는 이념적 정치적 의도의 결과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성대경 위원장(가운데)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규명위는 이날 25권에 달하는‘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를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