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개교하는 자립형사립고인 서울 하나고등학교 합격생 손수완(14·서울 도봉구 창일중 3학년)군은 "20일 저녁 합격자 발표를 옆집에서 확인했다"고 했다. 합격자 발표는 인터넷으로 공지되는데 기초생활수급자인 수완이네 집에는 컴퓨터가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 오현숙(49)씨는 8년 전부터 희귀성 난치병인 베체트병을 앓아 온몸의 근육과 관절이 심하게 아프다. 병 때문에 시력도 좋지 않고, 기억력도 종종 희미해진다. 아버지는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뒤 뇌경색과 고혈압이 겹쳐 가족과 떨어져 요양 중이다. 수완이와 어머니는 서울의 한 친척집에 얹혀살고 있다. 생활비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지급되는 매달 55만원이 전부다.
수완이의 하루는 학교 가는 것으로 시작해 어머니 병수발로 끝난다. 아침 8시 학교에 가서 오후 4시쯤 집에 돌아오면 누워 계신 어머니의 온몸을 주물러 드린다. 한참 공부를 마친 새벽 1시부터는 또다시 30분 동안 어머니의 팔다리를 주물러 드린다. 1시 30분쯤 하루가 끝나는 수완이의 수면시간은 많아도 6시간을 넘긴 적이 없다.
수완이의 작은 책상에 놓인 문제집은 대부분 사촌형들에게 물려받은 책이다. 집에 컴퓨터가 없으니 인터넷 강의는 꿈도 못 꾼다. 학습용품 구입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몇달 전부터는 같은 동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수학 과외를 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비는 고작 15만원이지만 수완이에겐 소중한 책값이다.
다행히 저녁에는 집 근처 학원에서 보충 학습을 받을 수 있다. 창동에 위치한 보습학원 '이상수학원'에서 딱한 사정을 듣고 수완이를 무료로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들이 이것저것 문제집을 챙겨주기도 한다. 수완이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공부를 해왔지만 외고 준비하는 친구들처럼 영어 듣기 시험 준비 등 고난도(高難度) 공부는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수완이가 자립형사립고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이 설립한 하나고는 40명(전체의 20%)의 정원을 경제적 취약계층과 군인·환경미화원 자녀들로 뽑았다. 특목고나 자사고에서 정원 외 선발 등의 방법으로 일부 취약계층 학생을 선발한 적은 있지만 정원의 20% 규모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실시한 것은 처음이다.
수완이는 "특목고나 자사고 일반전형에 합격하려면 별도로 선행학습이나 고난도 영어 듣기 공부를 해야 하는데 못해서 기대도 안 했었다"며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이 없었다면 그냥 일반고에 진학해 학교 수업 중심으로 방과 후에는 독학(獨學)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물론 수완이가 실력도 없이 합격한 것은 아니다. 선행 학습을 제대로 하지 못해 고난도 문제에는 취약하지만 학교 내신 성적만큼은 항상 반에서 줄곧 2등을 유지해 왔다. 지난 9~13일 치른 기말고사에선 전교 3등까지 올랐다. 수완이의 담임선생님인 창일중 김애리 교사는 "수완이는 참 착하고 성실하지만 공부에 있어서만큼은 매섭다"며 "학원의 도움 없이도 대학에 갈 수 있는 자사고에 진학하게 돼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하나고는 수완이의 성실성과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정철화 하나고 교감은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심사위원들의 가슴을 울렸다"며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뽑힌 학생들이 하나고의 주력(主力)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가르치겠다"고 했다.
앞으로 수완이와 같은 학생들이 자사고나 특목고에 진학할 수 있는 가능성은 좀 더 풍부해질 전망이다. 지난 19일 전국외고교장협의회(회장 강성화 고양외고교장)는 기자회견을 통해 "앞으로 외고 입시에서 사회적 배려 대상자 등의 모집 정원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24일 수완이의 작은 집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수완이는 "하나고 일반전형으로 뽑힌 아이들은 (공부를) 잘한다고 들어서 걱정"이라면서도 "열심히 공부해 도와주신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에게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수완이의 꿈은 KAIST에 장학생으로 진학해 세계적인 생물학자가 되는 것이다. 수완이는 "아직까지 병의 원인도 규명되지 못했다는 어머니의 베체트병 원인을 내 손으로라도 규명해 어머니를 꼭 완치시켜 드리고 싶다"고 했다.
입력 2009.11.25.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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