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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아침논단] 왜 한국인은 자살률이 높은가

  • 이민진 재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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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09.11.19 03:13

    작년 금년 유명 인사 자살이 줄을 이었고
    이달 들어 재벌 회장이 목숨을 끊었다
    내 모국에서 왜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민진 재미작가
    이민진 재미작가

    7년 전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가족과 주일예배를 드린 뒤 서점에 갔다. 책을 한권 집어들었는데, 갑자기 오른쪽 눈이 보이질 않았다. 왼쪽 눈만 감아봤다. 두꺼운 기름때가 낀 유리창을 통해 바깥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다음 날 병원에 갔더니 '중심장액성 망막증'(CSR)이라고 했다. 망막의 황반에 장액이 스며드는 희귀한 병이라며 의사가 농담을 했다. "당신이 A형 성격이란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정말 대단하네요!" 이 병의 원인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트레스가 무엇보다 큰 요인이며, 매사에 스트레스를 잘 받는 A형(혈액형이 아니다) 성격에서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뚜렷한 치료법도 없고 수술도 큰 효과가 없으며, 금방 낫기도 하지만 재발도 잦고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돼요?" 내가 물었다. "어디 가서 누구랑 이야기를 좀 해요." "누구랑요?" "음…. 정신분석가?" "뭐라고요?"

    힘든 시절이기는 했다. 그때 나는 작가로서 완전 실패한 것 아닌가 스스로와 싸우고 있었다. 시댁이 큰 빚을 져서 남편과 나는 그걸 갚으려 허덕이고 있었다. 또 나는 6개월짜리 B형 간염 치료 과정을 막 끝낸 터였고, 네 살배기 아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인생은 더 힘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단 하루의 휴가도 없이 일주일 내내 일하셨는데! 아버지는 6·25 때 원산에서 홀로 월남하면서 열여섯 살에 온 가족을 잃었다. 그처럼 큰 어려움을 겪어온 부모님에 비하면 내 인생은 소풍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가족들과 사이가 좋았고 멋진 결혼을 했으며 교회 예배를 빼먹은 적도 없었으니까! 나는 미치지도 않았고 우울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왜 안과 의사가 나더러 정신과 의사를 만나라고 하는 것일까?

    한국은 OECD 30개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서른이 넘어서도 내 마음과 내 몸의 불화를 눈치 채지 못했던 나는 내 모국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어려움을 꿋꿋이 견뎌내는 것을 큰 미덕으로 삼는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못하는 말을 몸이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친다.

    한국인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한국 땅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의 한인 자살률을 보자. 뉴욕에서는 한달 평균 5명의 한국인이 자살을 한다. 전체 인구 대비 자살률보다 4배나 많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한국인의 사망 원인 25%가 자살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죽음에 이른 이유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대단한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학자인 에드윈 슈나이드먼(Shneidman) 박사는 '자살하는 마음'(The Suicidal Mind)이라는 책에서 자살의 보편적 특성 10가지를 꼽았다. 그는 자살자들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 어떤 값을 치르고서라도 그 고통스러운 감정을 멈추고 싶어한다고 강조했다. 자살이 죄악, 이기적 행동, 명예로운 탈출구라고 믿건 아니건 자살하는 사람은 너무 큰 고통을 느끼며 자살밖에는 다른 해답을 못 본다는 것이다. 만약 슈나이드먼 박사가 옳다면 우리는 그처럼 큰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높은 책임감과 부끄러움, 도덕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극기력이 높다. 고난은 오랫동안 우리 역사의 일부였으며 우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싸워 왔다. 하지만 홀로 견디어내는 극기는 수많은 해결 방안을 외면하게 만들기 때문에 위험하다. 작년, 금년 유명 인사들의 자살 소식이 줄을 이었고, 이달 들어 모 재벌그룹의 P회장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픔과 고통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때 한 눈밖에 안 보이는 상태에서 나는 정신분석가를 만나러 갔다. 하지만 내 멍청한 문제들에 대해 돈을 쓰는 일이야말로 멍청한 짓으로 느껴졌다. 기독교인인 나는 기도로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시 기독교인인 내 친구 생각은 달랐다. "좋은 의사도 기도의 응답일 수 있잖아!"

    주일에는 교회에 가고 화요일에는 정신분석가에게 갔다. 몇달 후 내 눈은 다 나았다. 그래도 나는 정신분석가를 계속 만났다. 학교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었던 것을 그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좀더 나은 방식으로 말하는 법, 결혼 생활을 좀더 잘 유지하는 법, 글을 더 잘 쓰는 법, 직장 동료와 업무 논의를 더 잘하는 법, 한계를 정하는 법, 심지어 아이를 잘 키우는 법까지. 골프를 더 잘 치기 위해 골프 프로에게 배우는 것처럼 나는 내 인생의 경기를 위한 코치를 만났다. 내 마음은 죽고 싶지 않겠지만 내 몸은 그 나름의 정직성을 갖고 있다. 그때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러 갔던 게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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