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주의(racism)에 관한 한 히틀러를 애송이로 여겼던 독재자. 유대인 절멸(絶滅)을 외치면서 29세 연하(年下) 연인에게는 뜨거운 연정(戀情)을 속삭였던 사내….

이탈리아 파시스트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Mussolini)에 관한 숨은 일화가 그의 연인이 남긴 일기장을 통해 공개됐다. 그의 마지막 9년간 연인이었던 클라레타 페타치(Petacci)의 1932~38년 일기를 토대로 한 책 '비밀 속 무솔리니(Secret Mussolini)'의 출간을 앞두고 16일 AP통신 등이 초록(抄錄)을 소개했다.

일기에 따르면, 악명 높은 나치 독재자 히틀러도 2차대전 동맹 무솔리니 눈에는 ‘눈물 많은 감상주의자’였다. 1938년 9월 뮌헨에서 히틀러를 만나고 온 무솔리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주 괜찮은 사람이야. 마음 밑바닥은 아주 낭만적이야. 나를 보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어. 나를 아주 많이 좋아해.” 하지만 그는 당시 커져가는 히틀러의 명성에 질투를 느꼈다. 1938년 8월 연인과 보트에 올라 이렇게 투덜댔다. “나는 어떻게 해서 사람들이 내가 히틀러를 모방한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어. 나는 1921년부터 인종주의자였어. 그때 히틀러는 (정치 경력으로 볼 때)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말야.”

10월 11일자 기록에는 지독한 인종주의가 묻어난다. "아프리카에서 오는 보고를 받을 때마다 분통이 터져. 오늘만 해도 또 다른 이탈리아인 5명이 흑인과 살다가 잡혔어. 아! 이 더러운 이탈리아인들, 7년도 안돼 제국을 파괴하고 있어. (…)이탈리아인들에게 인종에 대한 분별감을 심어줘야 해. 그래야 혼혈아를 낳지 않지." 유대인에 대해서도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냈다. "지독한 유대인들, 다 없애버려야 해. 섬을 만들어 그들을 수용할 거야." 당시 인종주의에 반대한 교황 피우스 11세까지 그에겐 경멸의 대상이 됐다. "이 교황이 교회에 가하는 해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야. 어떤 교황도 이처럼 해를 끼친 적이 없어."

그런 그도 연인 앞에선 벌거벗은 구애자였다. 무솔리니는 29살 연하인 페타치(당시 20세)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다섯 아이가 딸린 아버지였다. 1938년 1월 무솔리니는 페타치에게 이렇게 소곤댔다. "내 사랑, 어젯밤 극장에서 나는 마음속으로는 당신을 적어도 세번이나….당신을 갖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어." 그리고 다음 달 그는 딴 여자와 바람을 피운데 대해 용서를 구했다. "내 사랑, 내가 잘못했소. (…)내가 바보였소. 당신을 아프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둘은 1945년 4월 28일 2차대전 패배가 임박해지자 스위스로 달아나다 이탈리아 빨치산에게 잡혀 총살됐다. 시신은 밀라노 인근 주유소 광장에 나란히 거꾸로 내걸렸다.

性 컴플렉스가 낳은 히틀러의 잔혹함
피아트와 무솔리니, 협력과 갈등의 관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