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29] 독립문과 개선문

조선일보
  • 김영나 서울대교수·서양미술사
    입력 2009.11.17 23:07 | 수정 2009.11.23 15:21

    서울의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이 112년 만에 일반에게 공개됐다. 자주독립의 시대적 열망을 나타내는 독립문은 1897년, 무악재를 넘어 서울 도성으로 들어오는 중국 사신들을 맞이하던 영은문 자리에 세워졌다. 독립협회가 기금을 모아 완공한 독립문은 서재필이 가지고 있던 화첩 중에서 파리의 개선문을 모델로, 그 규모를 축소하되 모양만은 똑같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리의 개선문은 또 고대 로마의 개선문을 모델로 하였다. 로마제국 시대에는 로마에만 약 60개 이상의 개선문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을 비롯해 3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전쟁에 이기고 돌아오는 로마의 군사들이 지나갔던 개선문은 사각형의 형태로 중앙에 아치(arch) 형태의 열린 공간이 있고 양쪽에 넓은 벽이 있는 단순하면서도 장엄한 형태였다.

    파리 개선문.

    근대에 들어와 고대 로마의 이상주의와 덕목은 고전에 대한 동경과 더불어 유럽에서 신(新)고전주의를 탄생시켰고, 고대 로마를 모델로 하는 건축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에트왈 개선문으로 알려진 파리의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면서 로마제국의 영광을 계승하는 황제로서의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구상한 구조물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실각과 더불어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20여년이 지난 1836년에야 완공될 수 있었다. 이때부터 개선문은 프랑스의 모든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국가적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이 당당하면서도 아름다운 파리의 개선문은 로마의 개선문보다 더 유명해졌고 프랑스의 아이콘이 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1989년 파리 서쪽의 신도시인 라데팡스에 새로운 개선문 '라 그랑드 아르슈'를 세웠다. 단순한 큐브 형태의 이 거대한 흰색의 개선문은 콩코르드 광장과 에트왈 개선문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지점에 서 있다. 중앙의 가로 세로 약 100m의 열린 공간은 미래를 향한 창을 상징한다고 한다. 전통을 계승할 뿐 아니라 새롭게 발전시킨 또 하나의 역작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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