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 [2009 캠퍼스 지금은] [1] 전자학생증으로 출석체크… "대출(대리출석)? 옛날 얘기죠"

조선일보
  • 특별취재팀
  • 채성진 기자
  • 김동현 기자
  • 이신영 기자
    입력 2009.11.17 03:07 | 수정 2009.11.19 11:46

    사라진 대리출석
    대학은 전자출석시스템 확대 "아니 학생증과 다르잖아!"
    '성형논란' 진풍경도 벌어져, 강의중 사진 띄워 얼굴 확인까지… 1초라도 늦으면 지각처리

    11일 오후 1시 20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오비스(Orbis)홀에 학생들이 밀려 들어왔다. 경영대학 정형록(36) 교수의 '관리 회계' 영어 강의가 시작되기 10분 전이다.

    100석짜리 계단식 강의실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 앉은 학생들이 부산하게 학생증을 꺼냈다. 신상 정보를 담은 칩이 내장된 카드형 학생증이다. 류한올(22·생활과학부 3년)씨가 책상마다 설치된 단말기에 학생증을 꽂았다. 녹색 불이 두번 깜박였다.

    그 순간 교탁에 설치된 전자출석부에도 류씨의 얼굴 사진과 이름이 실시간으로 떴다. 정 교수가 전자출석부에 뜬 얼굴과 실제 얼굴을 대조하며 "이렇게 체크하는데 대리 출석할 강심장이 있겠느냐"며 "전자출석부 덕분에 강의 첫주에 수강생 대부분의 이름과 얼굴을 외운다"고 했다.

    캠퍼스에서 '대출(대리 출석)'이 사라졌다. 가투(街鬪)·쌍권총(F학점을 2개 받는 것)·최루탄·대자보·외상술·연애편지·메뚜기(도서관에서 주인이 자리를 비운 좌석을 찾아 메뚜기처럼 돌아다니며 공부하는 학생) 등도 마찬가지다. 40대 이상 한국인들이 대학 다닐 때 흔하던 일들이 요즘 대학생들에겐 옛날 소설 속 에피소드다.

    검정 매직으로 눌러쓴 대자보 대신 깔끔한 총학생회 홈페이지가 새로운 소통 공간이 됐다. 강촌·대성리의 허름한 민박집에서 말술에 취해 밤새 민중가요를 부르는 고전적인 MT는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요즘 대세(大勢)는 시내 레지던스나 교외의 펜션에서 하는 '술 권하지 않는 MT'다. 세월이 흘렀고 세상은 변했다. 앞선 세대에게 한없이 낯선 '2009년 대학가'를 세밀하게 들여다봤다.


    11일 서울 회기동 경희대 오비스홀에서 경영학과 정형록 교수가 U-CLASS 전자출석부에 떠 있는 학생들의 사진과 실제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의 얼굴을 대조해 출석을 부르고 있다./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대학가에 전자 출석 프로그램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0년 무렵이다. 1990년대 중반에 현금카드 기능과 도서 대출 기능 등을 결합한 다기능 전자학생증이 나왔고, 2000년 이후 연세대 등 여러 대학이 전자학생증으로 출결 체크를 할 수 있도록 강의실에 단말기를 달기 시작했다.

    2009년 11월 현재 국내 최고 수준의 첨단 전자 출석 시스템을 갖춘 대학 중 하나가 경희대다. 경희대는 2006년 '유비쿼터스 양방향 강의 지원 시스템(U-Class System)'을 도입했다. 학생들이 강의실에 설치된 단말기에 전자학생증을 꽂으면 실시간으로 학생들 신상 정보가 교수의 모니터에 무선 전송되는 시스템이다. 교수가 모니터의 사진을 클릭하면 학과, 학번, 출결 현황, 교수가 매긴 수업 참여도(1~10점) 등이 주르륵 뜬다.

    11일 오후 1시 30분 이 대학 경영학과 정형록 교수가 '관리 회계' 영어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15인치 모니터에 뜨는 얼굴과 실제 얼굴을 하나하나 대조했다. 학생들이 자리에 앉을 때마다 전자출석부의 공란에 수강생 78명의 얼굴이 속속 떴다. 이어 정 교수가 말했다.

    "I'll call attendance!(출석 부르겠습니다!)"

    오후 1시 56분 한 학생이 뒤늦게 들어와 조용히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전자출석부에 김모(19)씨의 얼굴 사진과 함께 빨간색 표시가 떴다. 정 교수가 "전자출석부와 호명(呼名)으로 출석을 더블 체크한다"며 "강의시간보다 1초라도 늦으면 자동으로 '지각' 체크도 된다"고 했다.

    경희대 홍보실 박세환(40)씨는 "100석 이상의 강의실 37곳 중 10곳에 이런 시스템을 갖췄다"며 "내년 1학기까지 강의실 2곳에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본지가 서울 시내 주요 대학 20곳을 조사한 결과 경희대를 비롯해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한양대·이화여대·숙명여대·건국대·국민대·가톨릭대·명지대 등 11곳이 전자 출석 시스템을 도입하고 점차 확대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칼같이' 정확한 출석 체크가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요즘 학생들 반응은 달랐다.

    "저는 열심히 듣는데 다른 사람이 대출하면 그게 불공평한 것 아닌가요?" (서도란·23·경희대 경영학과 4년)

    "수백명이 듣는 대형 강의에서 일일이 출석 부르는 건 시간 낭비잖아요." (류한올·22·경희대 생활과학부 3년)

    1모자 벗어보게2 연세대학교 화학과 장우동 교수가 컴퓨터 전자출석부에 뜬 사진을 스크린에 비춰 대리출석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이신영 기자 foryou@chosun.com
    12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과학관. 화학과 장우동(39) 교수가 75석짜리 계단식 강의실에서 '유기화학' 강의를 진행했다. 장 교수가 강의 도중 교탁에 설치된 전자출석부의 '유기화학' 아이콘을 클릭했다. 가로 2m, 세로 3m짜리 스크린에 출석한 35명의 학생들 사진이 떴다. 학생들 사이에서 "와~" 하는 탄성이 터졌다. 장 교수는 강의 도중 예고 없이 '대형 스크린'으로 출석을 점검하곤 한다. 경희대처럼 좌석마다 학생증 단말기를 달지 않더라도 전자출석부와 연동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사진과 얼굴을 불시 점검하는 것만으로 학생들이 대출할 생각을 접는다는 것이다.

    윤현우(26·생화학과 4년)씨는 "복학하고 첫 학기인데 대형 스크린에 갑자기 사진이 떠서 깜짝 놀랐다"며 "내가 신입생이던 2003년만 해도 한 번에 4명을 대리 출석해준 적도 있는데 이젠 어림없다"고 했다. 학생들은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사진을 수시로 업데이트할 수 있다. 한 학생은 "쌍꺼풀, 코 높임 수술을 하고도 사진을 바꾸지 않아 출석 체크 도중 '성형 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며 웃었다.

    서강대는 1960년 개교 이래 지금껏 'FA(Failure of Absence·결석에 따른 낙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강의마다 결석 허용 한도를 정한 것으로 3학점 강의에서 네 차례 결석하면 자동으로 F학점을 받고 지각 세 번은 결석 한 번으로 간주한다(학칙 시행세칙 제25조). 강의 첫 시간에 학생들이 앉은 자리가 '지정 좌석'이 된다. 강의 조교가 좌석표를 만들어 매시간 '소리 없이' 출결 체크를 한다.

    이에 따라 꼼꼼한 출결 체크가 '전통'으로 확립돼 전자출석부 없이도 학생들이 대출은 꿈도 안 꾼다. 갈수록 스펙 쌓기 경쟁이 치열해지는 탓도 있다.

    서강대 81학번인 이 대학 국문과 우찬제(47) 교수는 "우리 때도 출석 관리가 엄격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친구들끼리 막걸리를 마시며 한창 시대를 논하다가 수업종이 울릴 때 허겁지겁 뛰어들어가곤 했다"며 "요즘 학생들은 술 마시다 헐레벌떡 뛰어오는 사람도 없고, 교수가 지각하는 것도 싫어해 교수들도 지각할 엄두를 못 낸다"고 했다. 

    경희대 강의실 모니터에 출석이 표시되어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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