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233]

    입력 : 2009.11.17 03:11

    제19장 하얼빈의 열하루

    "본 검찰관은 재(在)하얼빈 러시아 시심(始審:일심)재판소 검사로부터 송치된 이토 공작 살해사건에 대한 서류 일체와 증거물들에 의거하여 심문을 시작한다."

    미조부치는 그렇게 심문을 시작하면서 먼저 안중근에게 나이와 직업 신분 주소 및 본적지와 출생지를 물었다.

    "이름은 안응칠, 나이는 서른한 살, 직업은 포수, 신분은 이렇다 하게 댈만한 게 없고, 주소는 평안도 평양 성 밖이며, 본적지와 출생지는 주소지와 같다."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단독으로 저격에 나서면서부터 결심한 대로 철저하게 자신을 숨겼다. 친인척이나 동지와 벗들이 자신 때문에 일본의 해코지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누가 들어도 애매한 답변이었으나 미조부치는 더 따지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다음도 마찬가지였다. 안중근은 대한제국의 신민이라는 것 외에는 부모와 처자도 없고, 일정한 주거도 없으며, 배운 것도 없을뿐더러 친구나 가깝게 지내는 포수도 모두 이름밖에는 분명한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되었으나, 어찌 된 셈인지 미조부치는 따져보는 법 없이 그대로 물어나갔다. 그러다가 안중근이 왜 이등박문을 미워하게 되었는지를 밝혔을 때에야 한 번 가볍게 반문하였다.

    "첫째 이등박문은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그의 지휘 아래 대한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하였으며, 둘째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이토가 군대를 동원하여 체결한 5개조의 조약은 대한제국으로부터 외교권과 경찰권을 앗아간 몹쓸 짓이었고, 셋째 삼 년 전 이등박문이 체결한 7조약은 대한제국의 망국을 앞당기는 국권 강탈이었다. 넷째 이등박문은 기어이 대한제국의 황제를 폐위시켰으며, 다섯째 이등박문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였고, 여섯째 그와 같은 조약체결에 분노한 대한제국 신민들이 의병을 일으키자 이등박문은 군사를 풀어 죄 없는 양민을 무수히 학살하였다…."

    일러스트 김지혁
    안중근이 이등박문의 죄목을 하나하나 꼽아 열다섯 항목을 대자 미조부치가 지나가는 말처럼 슬며시 물었다.

    "일본이 와서 한국에 기차가 개통되었고, 수도공사 등 기타 위생시설이 완비됐으며, 신식병원도 설립되고, 식산공업(殖産工業)은 점차 왕성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의 황태자는 일본 황실의 배려로 문명의 학문을 닦고 있다. 훗날 대한제국 황제 자리에 올라 세계의 여러 나라와 대면했을 때, 명군으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교육을 받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지만 그것도 안중근이 강경하게 식민주의 보호정책의 혜택을 부인하자 더 따져 묻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안중근이 두 살 때 부모를 잃고 일고여덟 살 때까지 김도감(都監)이란 사람이 키워준 고아가 되어도, 그 뒤 일하기 싫어 김도감 집을 떠나 포수가 되어 서른이 넘은 그때까지 처자도 없이 국경 지방을 떠돌았다고 우겨도 법원서기에게 그대로 받아 적게 할 뿐이었다.

    안중근이 알기로는 사건이 러시아 헌병대와 검찰 손에 있었던 것은 하루밖에 안 되었지만, 긴장한 혁명 전야 제정러시아 경찰의 수사력 덕분일까, 며칠 뒤 러시아 시심 재판소 검사가 넘긴 관계서류와 공범 피의자들은 뜻밖에도 많았다. 안중근은 함경도 부령에서 이등박문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일주일 전에 하얼빈으로 왔다고 우겼으나, 러시아가 일본에 넘긴 수사자료에는 안중근이 오래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렀던 것과 공모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여럿 올라 있었다.

    안중근은 이범윤도 최재형도 이위종도 최봉준도 모른다고 하고, 그 대신 민영환 최익현 조병세 민긍호처럼 국내에서 의병운동을 벌이거나 이미 순절한 사람들의 이름을 대어 미조부치를 혼란시키려 했다. 그러나 우덕순의 이름을 대고, 달리 하얼빈으로 함께 온 공범이 없는가를 추궁당할 때는 속이 뜨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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