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대안 심의기구인 민관합동위원회가 16일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민관합동위는 앞으로 기업·대학·의료복지·문화·과학연구 등 분야별로 세종시 자족성 보완책을 마련해 내달 최종 대안을 제시한다. 정부측 위원장인 정운찬 총리는 출범 회의에서 "세종시를 돈과 기업이 모이는 경제 허브, 과학과 기술이 교육과 문화와 어우러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과학 메카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현재 고려대가 세종시 40만평에 바이오메디컬 단지를 조성키로 했고, KAIST도 50만평에 신개척분야 연구 단지와 벤처 단지를 만들기로 했다. 서울대병원 세종시 분원 설치도 유력하다고 한다. 정부는 해외기업 유치를 위해 미국 보스턴, 독일 뮌헨과 프라이부르크, 중국 상하이 등 현지에서 8차례에 걸쳐 투자설명회를 가졌다.

세종시 문제는 앞으로도 정치적인 논란과 곡절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충청권 주민들이 환영하고 다른 지역 주민들까지 큰 관심을 가질 만한 대안이 나온다면 정치적 논란은 한순간에 사그라질 수도 있다.

정부는 세종시의 모델로 독일의 연구도시 드레스덴, 미국의 과학 단지인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 스웨덴의 친환경 도시 함마르뷔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세종시 대안의 성공 여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주부들이 "세종시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얘기하게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주부들이 세종시에 살고 싶으려면 세종시에 좋은 일자리가 많이 있어야 한다. 지금 경기도 과천에 있는 정부 부처들이 다 옮긴다 해도 공무원 숫자는 1만명 안팎에 불과하다. 더구나 그 공무원들의 부인들조차 세종시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

포항종합제철소 기공식이 열렸던 1967년 경북 포항 인구는 6만8000여명이었다. 1고로가 완성돼 가동에 들어간 1973년 포항 인구는 10만명으로 늘었고, 이후 포스코 설비 확장과 함께 1980년 20만명, 1988년 30만명으로 계속 불어났다. 포스코를 중심으로 새로운 시가지가 형성되고, 기존 시가지의 확장 개발도 이루어졌다. 농업과 어업으로 먹고살던 바닷가 시골마을이 포스코 한 회사로 인해 한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로 변모한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포항시 인구를 늘리려고 머리를 싸맨 적도 없고, 기업을 유치하려고 온갖 인센티브를 제공한 것도 없다. 좋은 일자리가 많이 있으면 사람들은 오지 말라고 해도 몰려든다.

경기도 파주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전체 면적의 93%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묶여 수십년 동안 미개발 지역으로 남아 있던 군사도시였다. 그러나 2004년 LG디스플레이 공장을 유치한 이후 지역 내 제조업체 450여개, 도·소매업 등 유통업체 550여개, 숙박·음식업 등 서비스 업체 270여개가 늘어나면서 수도권 북부지역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산업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파주시 인구도 2003년 24만4000명에서 2008년 32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주말엔 군인들로 가득 찼던 도심 식당가가 요즘은 젊은 회사원과 그 가족들로 붐비고 있다. 파주는 이제 수도권의 주부들이 한 번쯤 가서 보고 싶어하는 도시가 됐다.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낸 변화다.

우리 국민은 일자리가 있는 곳과 아이들 교육 여건이 좋은 곳이 서로 다를 경우 가족이 생이별하는 것을 감수하는 국민이다. 이런 국민들에게 한 도시가 매력 있게 보일 수 있으려면 좋은 일자리와 함께 좋은 학교가 있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원하는 교육을 시켜줄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곳에 대한민국의 어느 엄마가 이사 가려 하겠는가.

전북 순창군은 2003년까지 매년 1000명 이상씩 인구가 감소하던 곳이다. 순창군이 2003년에 옥천인재숙이란 군청이 운영하는 학원을 시작했다. 중3부터 고3까지 200여명을 선발해 기숙형으로 운영했다. 2007년 2명, 2008년 3명의 서울대 입학생이 나왔다. 순창군 인구는 그 이후 매년 몇백명씩 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얼마나 사람들을 끌어당기는지 보여주는 한 사례다.

내년 개교 예정으로 올해 처음 신입생을 뽑는 서울의 첫 자립형사립고 하나고의 경우 200명 모집에 1475명이 지원해 7.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하나금융 임직원 자녀 40명, 사회적 배려 대상자 40명을 빼면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이다. 전국에 4곳 있는 국제중학교에도 지원자가 구름처럼 밀려온다. 청심국제중은 보통 20대 1이다. 조기유학을 보내면 연간 5000만원 이상이 든다. 그러나 국제중에 보내면 연 700만원 정도로 영어 몰입교육을 시킬 수가 있다. 세종시에 이런 학교가 생기고, 세종시 거주자에게 신입생 선발에서 일정한 우선권을 준다면 전국의 학부모가 몰려오게 될 것이다.

전국 2200개 고교의 2009학년도 수능 성적을 분석한 결과 수능 3개 영역(언어·수리·외국어) 평균 합산 상위 30개 학교 가운데 특목고가 26개교를 차지했다. 나머지 4개는 비평준화 일반계고다. 이 특목고들이 수도권 일대에 밀집해 있다. 외고만 해도 전체 30개 중 수도권에 16개가 몰려 있다. 이런 교육 격차를 그대로 두고서는 어떤 세종시 대안도 성공하기 어렵다.

세종시를 지방 교육 부흥의 전진기지로 만들어야 한다. 외고·과학고·자립형사립고·자율형사립고·기숙형공립고 등 다양한 형태의 고등학교들을 세종시에 유치하고 세종시 거주 학생은 입학에 일정한 혜택을 준다면 주부들이 세종시를 보는 눈은 완전히 달라진다. 파격적인 교육 개방을 통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등을 비롯한 외국계 대학들의 분교도 만들어야 한다.

세종시에 오면 일자리가 있고, 세종시로 오면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대안(代案)이 나온다면 세종시 논의는 정치적 차원을 벗어나 삶의 질(質) 차원으로 격상(格上)되면서 새로운 계기를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