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박성서의 노래 속의 WHY] 톱가수들 데뷔곡이 오락가락하는 이유는…

조선일보
  • 박성서·대중음악평론가
    입력 2009.11.14 03:18 | 수정 2009.11.14 10:08

    가요사(歌謠史) 관련 서적 가운데 내용이 제각각인 게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게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데뷔곡과 실제 데뷔곡이 다른 경우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와 '트로트의 황제' 나훈아<사진>를 보자.

    이미자는 '열아홉 순정'(59년)을, 나훈아는 '천리길'(69년)을 자기 데뷔곡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실제 첫 취입 곡은 이보다 1년 앞서 발표됐다. '도라지 블루스'(58년)와 '내 사랑'(68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본인의 활동 기록도 변한다. 일례로 이미자는 올해 데뷔 50주년 기념공연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미자는 데뷔 51주년이 되는 셈이다.

    첫 취입곡과 연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취입은 했으나 실제로 음반이 나왔는지 지금껏 모르고 지냈던 경우도 있다. '여자 학사가수 1호'인 김상희를 비롯해 조영남, 송창식 등이 그런 케이스다. 김상희는 1979년에 히트한 노래 '십오야'(와일드캐츠 노래)의 원곡인 '삼오야 밝은 달'(61년)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본인은 이 노래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해 당시 데뷔 '몇' 주년 기념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조영남 역시 무명시절 연습 삼아 녹음했던 노래가 당시 음반으로까지 나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동안 자신이 데뷔곡으로 주장한 '디라일라'와는 실제 데뷔곡이 무려 2년 차이가 난다. 트윈폴리오의 송창식, 투코리언즈의 김도향, 라나에로스포의 한민은 듀엣음반 이전 솔로음반을 먼저 취입했다. 송창식은 손석우 작곡의 '멀어진 사람'(69년)을, 김도향은 라디오 드라마 '화려한 산하'(69년)의 주제가를, 한민은 '가지마오'(66년)를 각각 발표했다.

    1975년 이른바 대마초 파동으로 젊은 가수들이 대거 활동이 금지되었을 때 그 공백을 메우며 등장한 게 윤수일, 조경수, 조용필, 최병걸, 최헌이다. 이들은 모두 그룹사운드 출신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데뷔곡은 그룹사운드 시절의 곡들이다. 그러나 '가왕(歌王)' 조용필은 무명시절, 그룹 활동 이전 솔로로 먼저 음반을 발표했다. 제목은 '사랑의 자장가'로 이 음반엔 이름이 조영필로 표기되어 있다. 시쳇말로 굴욕이다.

    '록의 대부' 신중현은 자기 최초 발표 음반 '히키신 기타 멜로디'에 대해 자서전 등을 통해 줄곧 1958년도에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도미도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이 음반의 시리얼 넘버로 추정해보면 사정이 다르다.

    나훈아의 데뷔곡으로 알려진 ‘천리길’(69년) 보다 앞서 취입된 ‘내사랑’(68년) 앨범.
    즉 1964년 동경올림픽 직후 발매된 한 음반의 바로 다음 번호인 것이다. 그러니 최소 64년 이후에 발매된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음반에 수록된 '히키신 기타트위스트'다. 트위스트 리듬의 조류가 세계적인 붐을 일으킨 기원은 처비 체커의 'Let's Twist Again'으로 1961년에 발표됐다.

    또 다른 유형은 본명, 혹은 예명으로 데뷔한 뒤 이름을 바꾼 경우다. 이 경우 첫 곡이 대부분 프로필에서 누락된다. 주미옥(최양숙), 이가랑(임희숙), 문필연(문주란), 이화자(이수미), 방일매(방주연)의 경우가 그러한 케이스다. 때로는 당사자인 본인들조차 궁금해하지 않을, 한편 '아예 잊어줬으면'하는 기록일지라도 가요사 기록, 혹은 팬들에게는 한 인물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다.

    속칭 '유행가'로 불리던 대중가요를 이제 유행을 넘어 필요에 따라 시간에 구애됨 없이 들을 수 있는 시대다. 이 노래들은 당시 히트와 관계없이 마니아들 사이에서 또 한 번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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