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비겁한 진실화해委

입력 2009.11.10 23:15 | 수정 2009.11.11 01:47

조정훈·사회부차장대우

최근 국내 언론들이 '유럽간첩단 사건'과 관련한 뉴스를 전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이 사건이 고문 등을 통해 조작됐다는 조사 결과를 밝히고 국가의 사과와 법원의 재심을 권고했다"는 내용이었다.

'유럽간첩단 사건'은 해외 유학을 하면서 동베를린(동백림)과 북한을 방문한 유학생들이 간첩 혐의로 기소돼 사형 등을 선고받았던 사건이다. 지난 1967년 '동백림 사건'이 터진 지 2년 뒤인 1969년에 발생했다. 당시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원으로 있다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하기 위해 입국했던 박노수씨와 집권 여당인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이었던 김규남씨가 1972년 사형당했고, 다른 이들은 5~7년 형을 받았다.

언론들은 '1967년 유럽간첩단 사건은 조작', '40년 전 유럽간첩단 사건은 조작', '유럽간첩단 사건 가혹행위로 자백' 등의 제목을 달았다. MBC는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최근 중앙정보부가 영국 유학생들이 동베를린과 북한을 단순 방문한 것을 간첩으로 조작했다고 결론 내렸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유럽 간첩단 사건은 수사당국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로 자백을 받아낸 조작극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관련 뉴스를 보면서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사건 관련자가 "내가 받았던 돈이 북한 자금이라는 걸 알았고, 공작원을 만나 정해진 프로그램도 소화했다"고 밝혔던 한 월간지의 인터뷰 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실화해위가 밝혔다"고 하는데, 진실화해위는 보도자료를 내지 않은 상태였다. 뭔가 다른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취재 도중 알게 된 진실화해위 A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강압적인 수사와 가혹한 사형 집행 등 그 과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지, 사건 자체가 조작이어서 국가가 사과하라고 권고한 것이 아니다"며 "이 사건은 간첩 사건이 맞다"고 했다. 복수의 인사들은 "위원회가 보도자료도 내지 않았는데, 뉴스가 터진 것은 누군가가 '특별한 목적'으로 언론에 흘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사과정에서 일부 강압적인 수사나 불법 행위가 드러났다는 내용은 진보·보수인사를 가릴 것 없이 '예상했던' 결과다. 문제는 사건 자체가 조작된 것처럼 진실이 호도되고 있고, 진실화해위가 이런 전후 사정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진실화해위는 이렇게 '잘못된 보도'들을 인터넷 홈페이지 '언론보도' 코너에 버젓이 올려놓았다. 진실화해위 정책홍보팀에 전화를 걸어 "유럽간첩단사건을 조작이라고 보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바로잡을 계획은 없느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우리가 보도자료를 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계획이 없다"고 하더니 나중에 다시 전화를 걸어와 "조만간 보도자료를 내기로 했다"고 했다. 하지만 잘못된 보도가 나온 지 2주가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일부 언론들이 진실화해위 직원들의 성향과 비전문성을 비판했을 때 "사실과 다르니 바로잡아 달라"고 바로 다음날 기민하게 대응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진실화해위는 "은폐된 진실을 밝혀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국민통합에 기여하기 위함"이라고 설립목적을 밝히고 있다. 적어도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섰다면, 그 처리과정도 투명하고 거짓이 없어야 한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며 대충 넘어가자는 식은 곤란하다. 그냥 뭉개버릴 속셈이라면 "진실화해위가 좌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데 이용된다"는 비난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것이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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