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Why?가 간다] 생 드니를 찾아 떠나는 프랑스 파리

입력 2009.11.07 03:09 | 수정 2009.11.08 17:08

'순교자 언덕' 몽마르트르 아래엔聖者의 흔적 대신 '性地' 수두룩

"유로스타요? 먹는 건가요?"

유럽에 간다니 유로스타를 꼭 타보라는 선배의 말에 기자가 되물었던 말이다. 황당해하던 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유로스타'를 처음 들어본 기자는 군대에서 타먹던 '맛스타' 같은 음료 종류를 연상한 것이다.

'도버해협을 관통하는 해저터널로 런던~파리~브뤼셀 구간을 운행하는 고속열차가 유로스타라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난 3일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기자에게 모든 것은 유로스타 같았다. '나 같은 생초보가 파리를 하루 찾는다면 어떤 코스가 좋을까?'

이런 생각으로 온종일 헤매면서 결론 내린 1일 코스를 소개한다. 기다리느라 시간 낭비할 필요 없고 돈도 들지 않는다. '생 드니를 찾아 떠나는 파리 여행'이라고 의미 부여도 나름대로 해봤다.

곽수근 기자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사크레 쾨르 성당. / 사크레 쾨르 성당 위에서 내려다본 파리 시내 모습.
잘린 목을 들고 10㎞ 이상 걸었다고?

파리 샤를 드골 공항을 나오자마자 1000대 가까운 택시가 서있다. 수십개 줄로 길게 늘어선 게 마라톤 출발선의 참가자들처럼 보였다. 단거리 위주의 시내 운행을 귀찮아한 나머지 장거리 한방을 위해 이곳으로 몰려든 탓이다.

이렇다 보니 시내에선 택시를 잡기가 무척 힘들다. 이 때문에 파리시는 택시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기존 택시들의 거센 반발에 밀려 계획을 접었다. 기존 택시들이 항의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 이른바 '달팽이 파업'이다.

택시들이 곳곳에서 일부러 느리게 달려 버스와 승용차 운행을 마비시키다시피 했던 것이다. 기자는 택시 대신 버스를 타고 파리 시내로 향했다. 시내로 가는 길에 지나친 곳은 파리 북쪽 11㎞ 지점에 위치한 생드니(Saint-Denis).

일드프랑스 주(레지옹·Region) 센생드니 데파르트망(Department)에 있는 도시로 인구 9만여명이 살고 있다. 이곳의 이름은 파리의 초대 주교로 알려진 성(聖)드니에서 따왔다.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인 서기 250년경에 성자 드니는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참수(斬首)됐다. 기독교를 전해 혹세무민(惑世誣民)했다는 죄목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선 성자 드니의 순교 장면을 담은 그림을 만날 수 있다.

망나니가 내려치려는 엄청난 크기의 도끼만 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다. 목이 잘린 성자 드니가 자신의 목을 들고 지금의 생드니까지 걸어왔다는 데서 도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아무리 전설이라지만 잘린 목을 들고 10㎞ 이상을 걸었다니….' 밤에 도착한 파리의 첫인상은 '좀비(zombie·살아있는 시체) 영화' 그 자체였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성자 드니

서울 여의도처럼 센강 위 시테 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성자 드니를 조각상으로 만날 수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세 개의 문 중에서 가장 왼쪽 문 위에 돋을새김(부조·浮彫) 방식으로 벽에 붙어 있다.

자기 목을 가지런히 들고 방문객들을 맞는다. 양쪽에는 날개 단 천사들이 새겨져 있다. 앤서니 퀸 주연영화 '노트르담의 곱추'의 배경으로만 기억하던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인상이 성자 드니가 있는 장소로 바뀌는 순간이다.

노트르담(Notre Dame)은 '우리들의 귀부인'으로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볼만한 것이 안쪽에 꽤 있다. 1455년 이곳에서 명예회복 재판이 열렸던 잔다르크 상, 십자가에서 내린 그리스도를 무릎 위에 놓고 애도하는 마리아를 표현한 피에타 양 쪽에 있는 루이 13세와 14세 상(像)이다.

후자는 왕권이 성모 마리아를 통해야만 루이 14세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장미 창(rose window)이라고 불리는 3개의 스테인드글라스도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21m 높이에 있는 지름 13m의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관람객들을 압도한다. 한가운데 원을 자세히 보면,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찾을 수 있다. 이걸 다 공짜로 볼 수 있다.

순교자의 언덕엔 무허가 화가들이

순교자의 언덕(Mont des Martyrs)에서 유래했다는 몽마르트르 언덕. 여기서 말하는 순교자도 성자 드니다. 해발 130m로 파리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참수를 당했다고 한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성자 드니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대신 언덕 입구에는 다소 생뚱맞은 회전목마가 화려한 빛을 내며 돌고 있고, 언덕 꼭대기 생피에르 교회 주변에선 대부분의 카페들이 커피 한잔을 우리 돈 1만원 이상에 팔고 있다.

관광명소로 알려진 테르트르 광장에선 여전히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 100명을 훨씬 웃돌던 이곳 화가들이 요즘 절반 이하로 줄었다. 4일에는 간이 파라솔 아래 캔버스를 세우고 자리 잡은 화가들이 20여명에 불과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날씨가 쌀쌀해진 탓도 있지만 자릿세가 3배 이상 오른 것이 주된 이유다. 파리시는 최근 거리 화가들에게 노점상과 같은 세율을 적용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화가들이 내야 할 1㎡당 자릿세가 연간 160유로(약 27만8000원)에서 554유로(약 96만3000원)로 크게 올랐다.

서울로 따지자면 도로를 장시간 차지(점용·占用)한 대가로 무는 도로점용료에 해당한다. 서울시가 노점상에 부과하는 점용료는 1㎡당 공시지가에 0.01을 곱한 금액인데, 지역에 따라 연평균 36만~60만원 정도다.

몽마르트르 언덕 자릿세가 오르자 기존 허가받은 화가들은 줄고 이곳 주변에서 호객한 뒤 서서 그리는 무허가 화가가 늘었다. "예뻐요!" "그림!" 기자가 찾은 이날에도 무허가 화가들이 한국말로 접근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당시 현장을 비율로 따져보면 허가된 화가의 25%에 달하는 셈이다.

마르트르 언덕의 침체와 달리 언덕 아래 대로변엔 유흥업소가 번성하고 있었다. 화려한 붉은색 네온사인으로 '섹스(sex)' '에로틱(erotique)'이라는 간판을 단 성 관련 업소가 수두룩했다. 몽마르트르 예술가들의 보금자리로 성장한 곳이 '성지(性地)'로 변해가는 셈이다. 언덕 위에서 순교한 '성자(聖者)' 드니가 이곳을 내려다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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