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방송과 조선중앙통신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 살고 있던 강동림(30)이 26일 동부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자진 월북했다"고 보도했다.
본지 10월 28일자 보도
"경보가 발생했습니다." 올 9월 11일 오후 9시48분, 전북 진안군 진안읍에서 30년째 돼지농장을 하는 서모(60)씨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떴다. 1400여 마리 돼지가 있는 축사의 상태를 자동으로 체크해 보내주는 메시지였다.
축사에는 전기 차단기가 내려가 있었다. 그로 인해 산소 공급이 끊어졌다. 드문 일이었다. 당시 농장에는 서씨 부부만 있었다. 오전 1시 43분 차단기를 올리고 와 잠든 서씨의 휴대전화에 다시 같은 메시지가 떴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손전등을 들고 농장으로 향하는 서씨 앞으로 검은 물체가 날아왔다. 순간 장도리가 어둠을 갈랐다. 이마가 찢어지고 뒤통수가 깨졌다. 멍한 상태에서 손전등을 비춘 서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 동림이구나!"
7월까지 그의 밑에서 농장 일을 배우다 돌연 종적을 감춘 강동림이었다. 축사 한편에는 망치, 각목, 쇠파이프 등이 일렬로 정리돼 있었다. 서씨는 강동림에게 얻어맞고 58바늘을 꿰맸다.
◆그는 누구인가?
강동림은 9월 12일 사건으로 경찰에 쫓기고 있었다. 그는 비무장지대(DMZ)의 철책을 절단하고 월북했다. 2001년 9월 18일부터 2003년 11월 10일까지 자기가 근무했던 부대 근처였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강씨는 2남 2녀 중 막내다. 전남 순천의 2년제 대학 건축학과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났다. 현재 고향에는 부모와 그의 형이 살고 있다. 형은 어릴 때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정신 장애를 앓고 있다.
아버지(68)는 "동림이가 대학 때 친구를 잘못 만나 다단계에 빠졌다"며 "1000만원 넘는 카드빚도 대신 갚아줬다"고 했다. 강씨는 방위산업체에서 군 복무를 대신하려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현역 입대했다.
1년 만에 대학을 중퇴한 강은 제대 후 경기도 시흥의 엔진 부품업체에 자리를 잡았다. 예비군 훈련 때 외에는 고향을 찾지 않았다. "국민학교 때 회장도 하고 고교 때 선행상도 탔는데, 설마 그 아이가 그럴 거라곤 상상도…."
강동림의 지인들은 그를 온순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기억했다. 아버지는 "어떻게 그쪽으로 넘어갈 생각을 했는지 기가 막힌다"며 "절대 그럴 놈이 아닌데 무슨 귀신에 씐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왜?
강은 2007년 7월부터 작년 8월까지 수원의 한 반도체 회사 하도급업체에서 일했다. 신용 불량자였던 그는 회사 동료 A씨의 명의로 휴대전화를 만들어 최근까지 썼다. A씨 앞에 강동림이 나타난 건 올 5월이었다.
A씨가 집 근처인 전주병원에 새로 취직한 뒤였다. 강은 "새 일자리를 알아보러 왔다"고 했다. 5월 24일 강씨가 서씨 농장을 둘러보러 왔다. 서씨의 큰아들(31)이 생활정보지에 직원을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낸 지 하루 만이었다.
큰아들은 "전주병원 근처에서 면접을 봤다"면서 "나이도 비슷하고 생각하는 것도 기특해 채용했다"고 했다. 강동림은 큰아들에게 "농장일을 배워 고향에 돌아가 형 대신 노부모를 모셔야 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26일부터 일했다. 주민등록까지 서씨 집으로 옮겼다. 잠은 집에서 100여m 떨어져 있는 축사 사무실에서 잤다. 강씨는 "주식 책만 봐도 한 달이 지나간다"며 TV를 놓고 인터넷을 설치해 주려는 큰아들의 호의를 거절했다.
서씨 가족은 강씨가 지나치게 열심일 정도로 묵묵히 일만 했다고 기억했다. 첫 한 달은 외출도 하지 않았다. 서씨의 2남 2녀 자녀와도 형제처럼 어울렸다. 돌잔치나 생일 같은 가족모임에도 참석했다.
강동림은 "가족이라는 게 이런 거군요" "식구들끼리 외식도 할 수 있군요" 같은 말을 자주했다. 첫날부터 서씨 부부를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고 주말이면 그들과 함께 교회에 갔던 강은 "교회에서 어머님이 나를 아들로 소개했다"는 일화를 한동안 자랑하고 다니기도 했다.
서씨 가족은 100여만원의 월급은 물론 강씨의 휴대전화 요금도 대신 내줬다. 옷과 신발, 속옷까지 사입혔다. 7월26일은 두 번째 월급날이었다. 오후 9시쯤 강씨는 "축사에 할 일이 많다"며 서씨가 수박이나 먹자는 걸 거절했다.
그게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강동림은 사라졌다. 다음 날 오전 3시 31분, 큰아들 휴대전화에 '죄송합니다'라는 다섯 글자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혹시?
강동림이 다시 나타난 건 한 달 보름여 만이었다. 손에는 선물 대신 장도리를 들고 있었다. 서씨의 큰딸(33)은 "'동림이가 가정환경이 불우해 우리 행복했던 모습이 보기 싫었나 보다'하고 추측할 뿐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진안경찰서는 9월 24일 강씨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받고 다음 날 지명수배했다. 수사 결과 강씨는 서씨의 농장에서 사라진 뒤 전주 시내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씨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8월 27일 강동림은 전주 병원 근처 PC방에서 인터넷 게임에 접속했다. 28일 2400원을 편의점에서 결제한 것을 끝으로 그의 통장 잔액은 바닥났다. 서씨 농장에서 두 달 동안 받은 200여만원이 넘는 월급이 들어가 있던 통장이었다. 9월 3일 강동림의 휴대전화에서 마지막 발신번호가 잡혔다. 전주 효자동 근처였다. 경찰이 전화를 걸어보니 없는 번호였다. 9월 24일, 요금을 내지 않아 착·발신이 끊긴 강씨 휴대전화의 위치가 마지막으로 파악됐다. 진안 읍내였다.
10월 11일 오후 9시 18분, 서씨 휴대전화에 차단기가 내려갔다는 메시지가 또다시 떴다. 두려움이 앞선 서씨는 경찰에 먼저 연락했다. 15분 뒤 경찰과 함께 축사에 도착했을 때 건물 외벽에서 화염이 치솟고 있었다.
돼지 10여 마리가 유독가스를 마시고 죽었다. 경찰은 국과수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의뢰한 채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서씨 가족들은 "동림이의 소행인 것으로 본다"고 했다.
10월 22일 오전 3시 30분쯤, 진안 경찰서 관내에서 택시 강도 사건이 발생했다. 전주 시내에서 진안 읍내로 들어오는 26번 국도변이었다. 손님은 전주 병원 뒷골목에서 김모(49)씨의 택시를 잡아탔다. 목적지는 진안 읍내였다.
김씨는 "손님이 진안에서 축사를 경영한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운전석 뒷자리의 손님은 토할 것 같다며 택시를 세우게 했다. 잠시 후 기사 목덜미에 칼을 들이댄 손님이 말했다. "미안합니다. 손을 뒤로 올려보세요."
김씨는 손목을 묶으려는 느낌이 들자 필사적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그때 손바닥과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 범인이 허술하다고 생각한 김씨는 "나와서 한판 붙자"고 윽박질렀다. 손님은 키가 꽂힌 택시를 타고 그대로 달아났다.
사건 발생 9시간 만에 택시가 발견됐다. 상행선 천안삼거리 휴게소였다. 택시 안에 있던 현금 10만원도 사라졌다. 지문이 나왔지만 상태가 안 좋아 감식에는 실패했다. 사건 당일 친구 A씨는 강동림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택시 기사 김씨는 사건 직후 경찰이 보여준 강동림의 사진을 보고 "비슷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설왕설래일 뿐 아직까지 택시 강도가 강동림일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했다.
◆미스터리
강동림은 전과(前科)가 없다. 술도 마시지 않는다. 최근 1년간 통화 목록을 조회해 본 결과 특별히 여자와 통화하지도 않았다. 은행 계좌도 없었고 휴대전화는 정지된 날이 더 많았다. 그는 왜 북으로 갔을까?
강동림은 평소 북한 관련 발언을 한 적이 없었다. 서씨 가족에게 "진안에 오기 전에 사는 게 힘들어 몇 번 죽으려고 했다"고만 했다. 그는 서씨 큰아들에게 손목을 그은 흉터를 보여주며 "죽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 말했었다.
서씨 가족들은 강동림이 혼자 히죽히죽 웃을 때가 많았다고 기억했다. 친구들 역시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다. 친구들은 강씨를 '착하다'고만 기억했고, "동림이가 돼지 축사에서 그런 일도 했느냐"며 믿지 못해 했다.
경찰은 제대 후 교통사고를 당했던 강동림의 진료 내역도 파악했다. 혹시 머리를 다쳐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는지 알아보려 했지만 특별할 만한 내용은 없었다.
막둥이 하나만 보고 살아왔다는 강씨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강씨 가족은 물론 서씨의 가족들조차 "북쪽에서 강동림의 사진을 공개하기 전까진 믿지 못하겠다"며 그의 월북 사실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