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호] 북한 대남간첩 남파는 1968년이 절정

    입력 : 2009.11.06 03:29

    북한은 해방 직후부터 끊임없이 무장·비무장 간첩을 내려보냈다. 이들은 남한 내 좌익 세력들과 결탁, 민·관 이간, 특정 인물·정당에 대한 모략선전, 국내 지식인을 접촉해 '평화통일론'을 주장하고, 반정부 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혁신계 용공분자를 포섭, 사회 혼란을 야기하도록 유도했다.

    휴전(休戰) 이후 간첩 활동이 절정에 달한 것은 1968년이다. 북한연구소가 펴낸 '북괴도발 30년'에 따르면 이 해 생포된 간첩은 62명, 사살된 간첩은 319명이었다. 김신조 등 특수훈련을 받은 북한군 31명이 침투한 1.21 청와대 기습 미수사건이 일어난 해가 1968년이며, 1968년 10월30일부터 11월3일까지는 3차례에 걸쳐 15명을 1개조로 하는 북한 124군 부대 무장간첩 8개조 120명이 경상북도 울진군과 강원도 삼척군에 침투했다.

    1.21 청와대 기습 미수사건(사진 왼쪽), 경상북도 울진군과 강원도 삼척군에 침투한 사건(사진 오른쪽).
    '1.21 사태' 때 정부는 군 병력 1만9213명을 동원, 간첩 28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다. 2명은 도주했다. 원래 이들은 청와대, 미 대사관,육군본부,서대문형무소,서빙고 간첩수용소 등을 습격, 폭파하고 요인을 살해한 뒤 간첩을 데리고 월북하려 했으나 나중에 범위를 줄였다.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최초 발견은 주민이 했다. 간첩선을 발견하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허위 보고를 한 근무자들과 지휘관들이 나중에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간첩 107명이 사살됐고, 7명 생포, 6명은 도주했다. 민간인 30명 등 82명이 작전과정에서 숨졌다. 9살이던 이승복군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하다 살해된 것도 이 때다.

    북한이 언제 처음 무장간첩을 내려보냈는지에 대한 사료(史料)는 명확하지 않다. 1946년 4월15일 경기도 경찰국에서 큰 가방을 든 괴한들이 붙잡혔던 사건이 있었는데 이들 가방 안에 기관총과 실탄이 들어있었고, 나중에 38선 이북 전곡인민위원회에서 파견한 암살단으로 밝혀졌다.

    6.25전쟁 후 남한에는 잔당(殘黨)들과 남파 간첩이 섞여 활동했다. 1954년 8월24일 충남 천안군 풍세면에 무장간첩이 출현, 경찰관 1명이 중상을 입고, 양민 1명이 피살된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국군은 남한 내 간첩을 지속적으로 소탕, 1956년말 대부분 섬멸했다. 그러자 북한은 1957년 여름부터 대남 공작기구를 재정비, 무장간첩을 침투시키기 시작했다. 1957년 연평도 근해에서 북한 무장경비정이 어로 작업 중이던 어선 1척을 나포한 것을 시작으로 7월1일에는 경기도 가평군 상면 덕현리에서 무장간첩 3명이 발견돼 1명이 사살되는 등 무장간첩 출몰은 매년 수십차례씩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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