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VIEW] 신종플루… '실체 없는 공포' 부터 잡아야

입력 2009.11.03 02:33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1930년대 대공황 때,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남긴 이 명언(名言)은 신종플루 사태를 위한 말이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는 의학적으로는 신종플루의 공격에 잘 버티고 있으나 '심리전'에서 갈수록 밀리는 양상이다. 과도하게 부풀려진 불안심리가 증폭·확대되면서 불필요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내는 '공포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7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신종플루와의 전쟁'에서 대한민국은 선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10만여명이 확진환자 판정을 받고, 40명이 신종플루로 사망했지만, 사망자가 1000명을 넘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국내에서 매년 계절독감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통계에 잡히는 것만 평균 72명에 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선방이다. 신종플루의 확산은 빠르나 치사율(致死率)은 0.04% 내외로, 계절독감 치사율(미국의 경우 0.1~0.2%)보다 낮은 수준에서 막고 있다. 보건·방역 체계는 차질없이 가동되고 있고, 항바이러스제도 충분하다. 우리는 신종플루의 '의료적' 대응에선 확실하게 '이기는 게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 외적인 심리 게임의 상황은 다르다. 동네 병원에 가서 처방받으면 되는 경증(輕症) 환자가 대형병원에만 몰리면서 정작 중증(重症) 환자 치료가 지장을 받고 있고, 건강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거나 심지어 진단서를 허위 발급받아 결석시키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일선 초·중·고교 중엔 상황이 심각하지 않은데도 무조건 휴업하고 보는 곳들이 많다.

학교에선 친구가 기침만 해도 따돌림하는 '신종플루 왕따'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인터넷 등에선 '예방백신을 맞으면 죽는다더라'는 식의 근거 없는 괴담이 횡행하고 있다. 각종 모임이나 행사가 취소되면서 서민들은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고, 경제 손실도 커져 간다. 조심하는 것은 좋으나, 지나친 공포감이 불필요한 비용을 치르게 하고 스스로 신종플루와의 전쟁을 불리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인플루엔자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박승철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정부가 국민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못해 불안감을 심고 있다"고 말했다. 신종플루의 위험성에 대해 보건당국이 역학조사 등을 통해 과학적 데이터를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걱정 말라"는 호소만 하는 바람에 국민들이 믿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오명돈 서울대 교수(감염내과)는 '언론 책임론'을 들었다. "일부 언론이 '통계의 착시(錯視)'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은 10만명 중 40명이 사망했다면 9만9960명은 아무 일 없이 나았다는 뜻인데, 사망자 얘기만 하니 일반인 공포심이 과도하게 커진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의 한 관계자는 "특히 매일 피해 상황을 선정적으로 전달하는 방송 보도가 불안감을 부채질한다"고 했다.

선진국 언론은 신종플루 피해 상황을 매일같이 중계하듯 보도하지 않는다. 사망자가 1000명을 넘은 미국 신문이나 TV에선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보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일본 언론도 지난 봄 신종플루 발생 초기엔 호들갑을 떨었지만, '빠르지만 독하진 않다'는 신종플루의 정체가 파악되고 대응체계가 갖춰진 이후엔 피해상황 보도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본 전문가들은 신종플루 피해를 '80대 10대 10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신종플루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80%는 아무 증상 없이 넘어가고, 10%는 콧물·인후통 같은 약간의 증상은 있지만 병원에 안 가고도 치유되며, 나머지 10% 정도만 본격적인 증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즉 '고(高)위험군'이 아닌 건강한 사람이라면 10명 중의 9명은 자기가 신종플루에 감염됐는지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자연 치유된다.

가장 걱정되는 대목이 타미플루도 듣지 않는 변종(變種) 바이러스의 출현 가능성이나, 아직 그럴 조짐은 세계 어디에서도 보고되지 않았다.

지난 20세기, 인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세 차례의 전쟁을 치렀다. 스페인 독감(1918년) 때는 5000만명이 사망했고, 아시아 독감(1957년)은 100만명, 홍콩독감(1968년)은 70만명의 희생자를 냈다. 세 번 모두 인류의 참패였다.

반면 이번 신종플루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선 인류가 상당히 선전하고 있다. 그만큼 인류의 저항력이 강해졌다. 영양상태와 공중위생이 좋아졌고, 방역 시스템이 개선됐다. 바이러스도 진화했지만, 그에 맞선 인류의 방어 능력은 더욱 좋아졌다.

전문가들은 '신종플루와의 전쟁'은 결국 개개인의 면역력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고위험군이 아닌 대부분의 일반인은 과로·과음하지 않고, 적당한 운동과 휴식으로 면역력을 키워 놓으면 설사 감염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지금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독하지 않은' 바이러스에 지레 겁먹고 방어전선을 흩트리는 '집단 히스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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