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출판인들의 모임인 동아시아출판인회의가 지난 29일 '동아시아 100권의 책'을 선정해 발표했습니다. 그중 26권이 한국을 대표하는 책으로 선정됐는데, 막상 그 목록이 발표되자 학계나 출판계에서 "이런 책이 어떻게 한국을 대표하는 책이 될 수 있느냐"며 뒷말이 무성합니다.
중국이나 일본 출판계가 어떤 기준으로 책을 선정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의 경우 목록을 보면 정말 어떤 기준으로 책을 선정했는지 궁금해집니다. 한국의학사, 한국과학사, 한국음악사, 한국근대문예비평사, 한국미술의 역사 등 분야별 통사들이 대거 선정된 가운데 진보 성향 학자들의 논문집이나 에세이집이 일부 포함됐습니다.
우선 26권으로 한 나라의 지적 자산을 전부 내놓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부터 듭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선정돼 '한국의 책 100'을 선정·번역하는 사업을 했을 때 선정기준 때문에 큰 논란을 빚은 바 있습니다. 거기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나 봅니다. 100권으로도 안되는 일을 26권에 담으려는 발상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동아시아 문화교류 활성화라는 명분이 아무리 그럴듯하다고 해도 이번 이벤트는 무리였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게다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중요한 저서들은 빠지고 아직 평가가 끝나지 않은 책들이 들어간 것은 선정위원들의 안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에 선정된 책들이 일본어 중국어 영어로 번역될 계획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선정에 관여한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정말 이런 책들이 번역됐을 때 우리의 지적 역량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될까요?
입력 2009.10.31.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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