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9일, 자전거에 탄 30대 남자가 새벽 어스름을 뚫고 인적 드문 서울 상암동 한강시민공원(현 난지캠핑장)에 들어섰다. 남자는 키 170㎝에 상체 근육이 다부졌다.

그는 이날 새벽 네 번째 집과 공원을 왕복하는 길이었다. 그는 공원에서 4㎞쯤 떨어진 다세대주택 월셋집(36㎡·11평)에 살았다. 그는 수풀로 둘러싸인 모래 둔덕에 자전거를 세우고, 뒤에 싣고 온 종이박스를 내렸다. 과일가게에서 흔히 쓰는 상자였다. 그는 상자에서 묵직한 검정 비닐봉지 2개를 꺼내 물과 흙이 반쯤 고인 우묵한 구덩이에 던졌다. 구덩이에는 남자가 앞서 버린 비닐봉지가 6개 더 있었다.

며칠 뒤, 한 낚시꾼이 한강에 떠내려가던 검정 비닐봉지 하나를 건졌다. 무심코 열어본 낚시꾼이 기겁했다. 여성의 대퇴부 한쪽이 들어 있었다. 부패가 심한 상태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신원 확인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기존 실종자들 DNA 가운데 시신과 일치하는 것이 없어 신원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이 시신 나머지 부분을 찾아나섰지만 헛수고였다.

미제 사건으로 묻힐 뻔한 토막살인사건 용의자가 4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시신의 주인이 안모(사망 당시 37세)씨라고 확인하고, 경기도 안산에서 안씨의 전 남편 주모(36)씨를 붙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고 28일 밝혔다. 경찰 조사에서 주씨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간 사이 아내와 다투다 목 졸라 숨지게 했다"며 "닷새 동안 문 잠근 안방에 시신을 놓아뒀다가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8토막을 내서 한강공원에 내버렸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주씨는 봉제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지난 1998년 5년 연상의 미싱사 안씨와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다. 주씨가 불황으로 실직해 막노동판을 전전하면서 부부관계가 벌어졌다. 주씨 부부가 살던 동네 주민들은 경찰 조사에서 "부부가 툭하면 욕하며 싸웠다"고 했다.

2004년 3월 두 사람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안씨가 이혼 두 달 만에 "아이들과 떨어져서는 못살겠다"며 돌아왔다.

2005년 5월 3일, 부부는 이른 아침부터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며 돈 문제로 크게 다퉜다고 경찰은 전했다. 장남(당시 7세)과 차남(당시 3세)이 각각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 간 뒤에도 부부싸움은 계속됐다.

주씨는 경찰 조사에서 "오전 11시쯤, 아내가 '언제 돈 벌어올 거냐'고 소리를 지르기에 잔소리를 피해 일어섰다"며 "아내가 '가긴 어딜 가냐'고 나를 붙들어 순간적으로 아내의 목을 움켜잡았다"고 했다.

주씨는 두 아들을 데리고 경기도 안산으로 이사해 막노동으로 혼자 두 아들을 키웠다. 서류상으로 이혼한 상태라 주위에서도 안씨가 없는 것을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올 3월, 숨진 안씨의 남동생(36)이 수소문 끝에 주씨를 찾아왔다. 누나가 몇 년째 연락이 되지 않자 찾아나선 것이다. 남동생은 경찰 조사에서 "조카들이 나를 보고 '아빠가 엄마는 죽었다고 했다'고 말해 놀랐다"고 했다. 남동생은 곧바로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 조회 결과, 안씨가 4년간 은행이나 병원에 간 기록도 없고 휴대전화 사용기록도 없음이 드러났다. 경찰은 안씨 장남의 DNA를 채취해 국과수에 보냈다. 국과수는 이를 미제 사건 희생자와 실종자 DNA와 대조한 끝에, 4년 전 한강에서 발견된 토막 시신의 DNA와 모자(母子) 관계라는 결론을 냈다.

경찰은 "평소 부부싸움이 잦았다"는 옛날 이웃들의 증언을 토대로 주씨를 유력한 용의 선상에 올렸다. 거짓말탐지기 검사 때 주씨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고 했지만, 기계는 '거짓말'이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물증이 없었다. 주씨 부부가 살던 마포구의 셋집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경찰은 범행도구도, 혈흔도 찾지 못했다. 아이들은 사건 당시 너무 어려 기억이 희미했다. 경찰은 최면으로 기억을 복원하려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주의가 산만한 편이라 최면이 걸리지 않아 포기했다.

경찰은 수사망이 좁혀오면서 주씨가 도주할 것을 우려해 지난 24일 절도 혐의로 영장을 발부받아 주씨를 체포했다. 명목상 혐의는 지난 2004년에 저지른 사소한 절도였지만, 경찰이 집중 추궁한 것은 안씨를 살해했는지 여부였다.

경찰 관계자는 "주씨는 무엇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지난 4년간 다섯 번이나 집을 옮겼다"며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다 털어놓고 편히 살라'고 했더니 입을 열었다"고 했다.

경찰은 28일 주씨가 시신 유기장소로 꼽은 곳으로 향했다. 그 사이 캠핑장 공사가 끝나, 주씨가 지목한 곳은 강이 돼 있었다. 경찰은 "유기 당시부터 물이 자주 넘나들던 곳"이라고 혀를 찼다.

[살인마의 머리 속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