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엉터리 영문 안내판

조선일보
  • 김태익 논설위원
  • 김도원
    입력 2009.10.28 23:04 | 수정 2009.10.29 01:46

    중남미 어느 나라 관광호텔 객실에 "We only serve water passed by our manager"라는 말이 적혀 있다 해서 웃음거리가 된 일이 있다. 호텔측은 수돗물이 안 좋아 지배인이 검사해 합격시킨 물만 제공한다는 뜻으로 써 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지배인의 오줌만 손님들에게 제공한다"는 얘기냐며 배꼽 잡았다고 한다. 영어 칼럼니스트 조화유씨가 전한 얘기다. 'pass water'는 '소변 본다'는 뜻이다.

    ▶작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정부는 '칭글리시'(중국식 엉터리 영어)로 골머리를 앓았다. 중국에선 비상구를 '타이핑먼(太平門)'이라고 쓰는데 공항이나 버스터미널 중엔 글자 뜻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영어로 'Entry on peacetime'(평화시 출입문)이라고 써 붙인 데가 많았다. 위급할 때 쓰라는 문이 정반대 뜻으로 표시된 것이다. 일회용품을 가리키는 '이츠싱융핀(一次性用品)'을 'A Time Sex Thing'이라고 써 성인용품을 연상케 한 경우도 있었다.

    ▶대한민국 관문 인천공항에는 한때 'NO WAY OUT'이라는 팻말이 있었다. 의도는 "이 문을 통해서는 나갈 수 없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이 공항에선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뜻인 줄 알고 어리둥절해했다. 공항 화장실엔 "사용한 휴지는 변기 안에 버려주세요"라는 뜻으로 'Toilet paper in the bowl'이라고 써 붙였다. 외국인들에게 '변기 안에 휴지가 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말이었다.

    ▶한 해 590만 외국인이 한국을 찾는 국제화 시대에 영문으로 된 공공안내판은 나라 수준을 알리는 얼굴 같은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는 국가 상징물이나 문화재를 설명하면서도 철자·구두점 잘못은 말할 것도 없고 멀쩡한 사실을 왜곡한 영문 안내판들이 넘쳐난다.

    ▶광화문광장에 들어선 새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서울시가 세운 영문안내판이 '세종대왕이 한국어를 발명했다'고 잘못 소개했다는 한림대 손우현 교수 고발이 어제 조선일보에 실렸다. 우리가 수천년 써온 '한국어'와 그 문자인 '한글'도 구분 못 하고 "세종대왕이 한국어(national language)를 발명(invent)했다"고 했으니 외국인들에게 우리는 15세기 들어서야 언어를 갖게 된 미개민족이라고 떠들고 있는 셈이다. 한쪽에선 많은 돈 들여 국가 브랜드 키우겠다고 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뭔가 크게 잘못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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