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218]

    입력 : 2009.10.27 03:11

    제19장 하얼빈의 열하루

    안중근이 쏜 처음 세 발의 총성은 워낙 힘차고 흥겨운 군악 소리에 묻혀 환영의 뜻을 나타내는 폭죽 소리 같은 것으로 무심코 지나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연이어 세 발의 총성이 더 들리자 하얼빈 역두는 이내 불길한 느낌으로 그 소리를 알아들었고, 이어 사람이 풀썩풀썩 쓰러지기 시작하자 비로소 사태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먼저 성한 수행원이 쓰러진 이등박문을 부축하고, 러시아 헌병대가 재빨리 주변을 에워싸며 뒤늦은 경호조치에 들어갔다. 양쪽 모두 놀라 허둥거리는 게 안중근에게 거사의 성공을 짐작게 했다. 그제야 안중근은 자동으로 재장전된 한 발이 남은 권총을 내던지고 목청껏 소리쳤다.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세계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노서아 말로 미리 준비해둔 만세였다. 그제야 가까이 있던 러시아 헌병 하나가 안중근을 덮쳐오며 소리쳤다.

    "니폰스키? 카레스키?"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를 묻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안중근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또 한 명의 러시아 헌병 하사관이 안중근을 덮쳐 둘은 한 덩이가 되어 승강장 바닥을 뒹굴게 되었다. 거기에 몇 명의 러시아 장교들이 더 가세해 그들에게 둘러싸이게 되면서 안중근은 이후 두 번 다시 이등박문과 그 수행원들 쪽을 볼 수 없었다.

    러시아 헌병대와 장교들은 안중근을 여럿의 힘으로 제압한 뒤, 먼저 주머니를 뒤져 안중근이 호신용으로 지니고 있던 단도와 함께 몇 가지 소지품을 빼앗았다. 그리고 포승으로 두 팔과 손을 묶어 하얼빈 역사(驛舍) 안에 있는 러시아 철도수비대 헌병 분견대 사무실로 끌고 갔다.

    일러스트=김지혁

    러시아 헌병대는 포승에 묶인 안중근의 사진을 몇 장 찍더니 다시 역 구내에서 널찍한 사무실 하나를 빌려 그리로 데려갔다. 그 과정 모두 헌병대의 삼엄한 경비 아래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안중근은 한층 더 강하게 성공을 예감하였다. 심문이 시작되면서 조금 느슨해진 포승 덕분에 이마께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된 손을 들어 성호를 그었다.

    '천주 예수여, 뜻대로 하오시되, 무단히 십계(十戒)를 어긴 것이 아니거든, 제가 하고자 한 바를 이루게 해주시옵소서.'

    그때 심문관인 러시아 장교가 한국인 역관을 통해 물었다.

    "그대는 지금 무엇을 빌었는가?"

    "내 거사가 성공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그 한국인 역관이 고약했다. 거사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자신이 무슨 대단한 벼슬이나 한 것처럼 안중근을 죄인 취급하며 멋대로 통역했다. 범죄의 성공을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라고 전해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도 심문관보다 제가 더 나서 안중근을 나무라고 따졌다.

    그날 첫 번째 심문관은 직위가 그리 높지 않은 듯 주로 안중근의 이름과 주소, 직업 및 가족관계같이 신분에 관한 것과 안중근이 함경도 부령에서 출발했다고 둘러대자 그곳에서 하얼빈까지의 이동경로 따위 사실 관계만 물었다. 그러나 두 번째 심문은 달랐다. 심문관이 더욱 고위직이고 또 일본인 입회하에 이루어진 탓인지, 이번에는 거사 동기나 신분 배경 같은 것을 제법 깊이 따져 물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려 두 번째 심문을 마쳤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다.

    심문을 끝내고 방을 나가면서 그 심문관이 알려주었다.

    "이곳은 우리 러시아가 관할하는 지역이므로 범죄의 재판권은 원칙적으로 우리 러시아에 있다. 그러나 너희 조선은 지난 1905년의 조약으로 외교권과 재판권을 모두 일본에 넘겨주었기 때문에 너는 오늘 24시 안으로 이곳에 있는 일본 영사관에 넘겨지게 된다. 그리하여 청나라 여순에 있는 일본 관동도독부의 재판 관할에 들게 될 것이니 그리 알라."

    그 바람에 안중근은 저녁을 얻어먹고도 몇 시간 텅 빈 사무실에 혼자 머물게 되면서 비로소 무엇에 취한 듯 보낸 하얼빈에서의 엿새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