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명문' 경기고와 오늘의 대원외고

조선일보
  • 이인열 기자
    입력 2009.10.26 03:03 | 수정 2009.10.26 03:42

    경기高 열풍땐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
    대원, 평준화 시대 '엘리트 교육' 숨통

    "정운찬 총리가 경기고에는 입학할 수 있었지만 대원외고는 못 갔을 것이다."

    지난 23일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외고를 특성화고로 전환해 추첨으로 뽑자"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시골 출신의 정운찬 총리가 46년 전엔 당대 최고 명문이던 경기고에 들어갔지만 지금이라면 사교육을 받지 못해 외고에 합격 못 한다는 얘기였다.

    35년 전 고교 입시를 평준화로 바꾼 데는 우수 인재를 싹쓸이하며 사교육 광풍을 조장한다는 경기고에 대한 비판이 그 중심에 있었다. 평준화 도입 후 최고 명문이 된 대원외고도 똑같은 논리로 비판받는 것은 아이러니다. 당시 경기고는 전국 단위로 수재들을 뽑았고, 지금 대원외고도 마찬가지다. 다만 경기고 시대엔 다른 고교들도 전국 단위로 뽑았지만, 대원외고는 일반고의 손발을 묶어 두고 있어 선발권의 특혜논란이 있다.

    그러나 경기고 전성시대에는 경기고 외에도 지방마다 경북고, 경남고, 부산고, 광주일고, 대전고 등 경기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문들이 많았고, 학생 입장에선 선택권이 지금보다 넓었다. 중앙대 이성호(교육학) 교수는 "평준화 정책 때문에 외고 등 일부 특목고를 제외하고는 선택할 만한 특색 있는 학교가 없다 보니, 수재들이 그나마 제일 낫다는 외고로만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학교를 만들지 않은 채 가짜 평준화만 외쳐온 잘못된 교육정책이 '대원외고 신화'의 또 다른 원인이란 설명이다.

    사교육 시장의 상황이 당시와 지금과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1970년대에도 많은 중학생이 경기고에 가려고 과외도 받고, 단과 학원도 다녔다. 그러나 각종 전문화된 학원이나 전문 입시 강사 등 사교육 인프라가 지금보다 못했고, 경제적 능력이 있는 계층이 지금보다 많지 않아 고액 과외 수요도 적었다.

    따라서 지방의 머리 좋은 수재들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명문고에 들어갈 가능성이 그만큼 높았다. 시대적 상황이 달랐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지금은 지나치게 평등의식이 확산돼 누구든 외고에 가려고 하다 보니 사교육이 과열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합격생 수에선, 경기고가 한 해 300명이 넘었다(1970년). 그해 졸업한 경기고 3학년생(600여명)의 절반이 서울대에 간 셈이다. 대원외고는 1998년 163명을 서울대에 보내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후 매년 50명 이상을 보낸다. 한 학년 정원(420여명) 대비 비율은 15%로, 경기고 전성기보다는 못하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