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속 번영 61년… 이스라엘을 다시 본다] 애국심이 무기 '선인장세대'

입력 2009.10.23 03:07 | 수정 2009.10.23 04:38

이스라엘서 태어난 사람들 특유의 생존 본능 지녀
전쟁나면 외국서도 달려와

#선인장 차바(Tsabar)

차바는 이스라엘에 흔한 선인장 이름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퍼져서 이스라엘로 건너왔다. 척박한 네게브 사막에도 차바는 뿌리를 내린다. 가시 돋은 열매껍질을 벗기면 달콤한 과즙과 영양분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사람'을 차바라고 자칭한다. "겉은 날카롭지만 속은 달콤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외교부 직원 엘라드 라츤(Ratson·35)은 '차바'다.

#73년의 아이들, 그리고 생존 본능

라츤은 1974년 10월생이다. 이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73년 아이들'이라고 불린다. 1973년에 이집트-시리아-요르단 연합군과 이스라엘군이 전쟁을 벌였다. 2주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 거리는 임신한 여성들로 넘쳤다. 그들이 '73년 아이들'의 어머니들이다. 라츤은 "죽음 앞에서 대를 이으려는 아버지들의 본능이 우리를 낳았다"고 했다.

이슬람 국가인 예멘의 항구도시 아덴에서 구두를 닦다가 12살에 건너온 할아버지, 비밀리에 시오니즘 운동(유대인 국가 건설 운동)을 하다가 사형을 선고받고 탈출한 오빠를 따라 이주한 할머니가 만나 아버지를 낳았다. 아버지는 모로코 출신 처녀를 만나 결혼을 했고, 라츤이 태어났다. 라츤은 "아버지세대는 생존 본능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며 "아버지들은 무조건 유대인들은 생존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엘라드 라츤

#그칠줄 모르는 모험정신

고교 졸업 후 라츤은 징집됐다. 공군에 응시했다. "아버지 꿈이 조종사였다. 나는 '나 대신 조종사가 돼라'는 말을 질리도록 듣고 컸다. 소리만 들으면 그 비행기 기종이 뭔지 알 정도였다." 그런데 최종 시험에 떨어졌다. 다른 부대 입영 한 달 뒤까지 아들은 조종사 시험에 붙었다고 속였다.

제대 후 라츤은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됐다. 국가는 안보를 위해, 시민사회는 부(富)를 위해 첨단기술에 매진할 때였다. "1997년에 한 업체에 취직을 했다. 그때 내 또래들은 열이면 열 다 그쪽에서 일했다. 그런데 2년 뒤 IT시장이 붕괴되면서 백수가 됐다."

아프리카로 갔다. 예멘을 시작으로 대륙을 횡단했다. "사람들과 풍경, 문화, 빈곤, 전쟁, 식민지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 생겼다"고 했다. 2년 뒤 케냐의 해변에서 횡단을 마쳤는데, "아직 질문이 남아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시아로 갔다. 2년 더 여행을 하고서 결론을 냈다. "세계를 더 알아야 한다." 캐나다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따고 국제기구에서 일했다. 제3세계 저개발문제를 다루는 기구였다.

#귀향, 그리고 애국심

2006년 레바논 전쟁이 터졌다. 가족을 통해 소집 통보가 왔다. 외국 체류자에겐 의무는 아니었지만 "간다"고 대답했다. 왜? "할아버지·아버지도 그랬고, 모두가 그러니까." 국제기구에 아예 사표를 내고 귀국했다. 허탈하지만 사흘 뒤 전쟁이 끝났다. "그때 문득, 다른 나라의 발전을 돕는 것도 좋지만 내 나라의 평화를 돕는 것이 더 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험을 보고 외교관이 됐다. 그게 내가 당신을 만나게 된 경위다." 그는 "아주 전형적인 이스라엘 사람, 이스라엘 가족 이야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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