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속 번영 61년… 이스라엘을 다시 본다] [3·끝] '괴짜'의 미친 아이디어까지 포용… 결국 '최고'를 만든다

조선일보
  • 특별취재팀
  • 김형기 부국장
  • 박종인 기자
  • 이용수 기자
  • 박승혁 기자
    입력 2009.10.23 03:07 | 수정 2009.10.23 04:40

    세계가 인정한 교육철학 과학의 산실 와이즈만硏 올 노벨화학상 수상자 배출
    "우리 프로젝트의 80%는 살아있을 때 보지 못한다"

    올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아다 요나트(Yonath·70)는 이스라엘 사람이다. 예루살렘 외곽 레호보트(Rehovot)에 있는 와이즈만과학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대학원격) 교수다. 와이즈만은 1934년 설립된 기초과학 연구기관이다. 학부도 없고 응용과학 분야도 없다. 수학·물리·화학 등 순수 이학과 과학교육만 다룰 뿐이다. 이스라엘 기초과학의 요람이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연구소다. 요나트가 이 연구소에 재직한 지 20여년. 그 20년 세월을 오로지 리보솜(세포 내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물질) 연구에 바쳤다. 같은 화학과 교수 다비드 카엔(Cahen·62)이 말했다. "그 20년 세월 동안 연구소에서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연구비 받은 만큼 성과를 내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와이즈만에서는 매주 '금주의 발견'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 과학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무한한 지원. 험난한 환경에서 이스라엘이 61년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비결이었다.

    #무한한 신뢰와 지원

    16.5m²(5평) 남짓한 연구실 안에는 실험도구와 연구서, 명함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부스스한 갈색 곱슬머리에 콜라병 바닥처럼 두꺼운 안경, 해진 티셔츠와 반바지를 걸친 늙수그레한 남자가 나와 악수를 청했다. 요나트의 노벨상 비결을 알려준 다비드 카엔 교수다. '괴짜 천재 박사' 하면 연상되는 모습이다. 실험의 훼방꾼들에게 그가 말했다. "학교가 내 연구에 모든 걸 지원하니, 나는 당신들에게 설명을 할 의무가 있다."

    카엔은 대체에너지원을 찾고 있다. 자원 부족한 이스라엘이 목숨을 건 분야다. 그는 "인공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연구 중인데 얼마 전 운 좋게 딱 한 번 성공했다"며 "인공 광합성에 미래의 희망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창문에는 벼룩시장에서 구입했다는 낡은 미군 태양전지판이 걸려 있다.

    카엔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이유는 "와이즈만과학연구소의 연구철학과 믿음 덕"이라고 했다. "과학은 마치 모자이크처럼 여러 다양한 연구와 발견을 통해 맞춰나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과학은 정부정책이나 예산 따위에 의해 흔들려선 안 된다. 마치 수학공식을 풀듯이 '빨리 답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사람도 있긴 하다. 하지만 와이즈만은 절대 우릴 압박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과학교육의 첫 번째 성공 원칙, 바로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이다. 그래서 와이즈만은 교수 자리가 공석이 되면 자동으로 다른 사람으로 채우지 않는다. "사무적으로 채우면 언젠가 나타날 최고의 적임자를 놓치는 거 아닌가. 우리는 3년이고 4년이고 유능한 인재를 기다린다." 다니엘 자이프만(Zajfman·50) 소장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스라엘 와이즈만과학연구소의 다비드 카엔 교수는 “우리 연구의 80%는 살아 있는 동안엔 결과를 볼 수 없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라고 했다./특별취재팀

    #호기심 또 호기심

    와이즈만과학연구소 사람들은 와이즈만의 또 다른 동력이 '호기심에 추진되는 연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자이프만 소장은 "오직 호기심만으로 뭉친 과학자들을 유치해, 대폭적인 투자와 자유를 주는 곳"이라며 "꿈도 못 꿨던 대발견의 어머니는 바로 호기심"이라고 했다. "'암을 고치겠다'며 찾아오는 과학자를 채용하지 않는다. 여기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곳이 아니라 순전히 '호기심'을 풀기 위한 곳이다. 뢴트겐을 보라. 'X선을 발견하겠다'고 연구서를 제출한 적 없다. 여러 실험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열린 생각과 자연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이 이끈 우연이었다."

    카엔 말도 마찬가지다. 카엔은 와이즈만이 '미친(crazy) 아이디어'를 지원한다고 했다. "'미친 아이디어'란 지금껏 알려진 물리·화학의 기본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지원금은 대부분 하수구로 흘러가겠지만 그러다가 인류를 구원하는 발견이 나올 수 있다." 카엔은 다음 연구 주제가 "페인트처럼 칠하는 태양열 전지"라고 밝혔다. 그는 "솔직히 이 시점에선 공상과학 같은 얘기지만, 벌써 몇 개 팀이 매달려 연구 중"이라고 했다.

    #영재들의 토론

    아무나 와이즈만에서 연구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다. 이스라엘국립예술과학고등학교(IASA)의 헤즈키 아리엘리(Arieli) 교장은 "이스라엘에서는 뛰어난 인재가 어릴 때부터 전폭적 지원을 받고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고 했다. 아리엘리는 "영재들일수록 창의성을 갖고, 위험에 맞서고, 남들이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길 도전받는다"며 "이것이 이스라엘의 두뇌들을 가르치는 방식"이라고 했다. 같은 교육 원리가 증폭돼 와이즈만의 연구 분위기로 이어진다. 한국 KAIST에서 공부를 마치고 와이즈만에서 3개월째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는 김상현(31)씨는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교수가 학생을 하급자 취급하지 않고 자주 토론을 벌인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맞는 주제에 도달하게 되고 공동 연구를 시작한다. 한마디로, 연구중심의 학문 풍토가 잘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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