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속 번영 61년… 이스라엘을 다시 본다] [2] 생존무기 만들다 보니… IT 등 첨단산업도 덩달아 꽃피워

조선일보
  • 특별취재팀
  • 김형기 부국장
  • 박종인 기자
  • 이용수 기자
  • 박승혁 기자
    입력 2009.10.22 03:02 | 수정 2009.10.22 08:34

    그들이 살아남는 법
    0.5㎏~5t 無人 항공기 美軍도 사서 아프간 투입
    "아이디어 80% 버려도…" 정부의 '묻지마 지원' 결실

    "이스라엘은 '데이 원(day one·건국 첫날)'부터 싸워야 했다.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적들에 대해 군사적 우위를 확보할 국방산업이 절실했다."(이스라엘항공산업 마케팅 담당 이갈 카니) "네게브 사막은 100년 전엔 유목민만 살던 버려진 땅이었다. 지금, 우리는 거기서 기른 농산물로 먹고 산다. 물이 부족하니까, 그래서 우린 물을 만들었다."(외무부 직원 엘라드 라츤)

    부존자원 부족, 있는 것은 인적자원뿐.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인용되는 한국에 대한 익숙한 평가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적에게 포위된 척박한 땅에서 생존을 위해 이스라엘은 첨단기술에 운명을 걸었다. 군수산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0.5㎏에서 5t짜리까지 모든 종류의 무인항공기(UAV·Unmanned Aerial Vehicle)를 보시게 될 겁니다."

    야이르 라마티(Ramati)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국영 방산업체이자 공업 부문 최대 수출업체인 이스라엘항공산업(IAI·Israel Aerospace Industries) 부회장이다. 지난 12일 텔아비브 벤구리온국제공항 부근의 IAI 본사. 축구장만 한 조립공장 문이 열리자 크기와 형태가 제각각인 반제품 상태의 UAV 10여대가 위용을 뽐냈다. 한 손으로도 들 수 있는 '버드아이'에서부터 날개 길이가 16.6m인 1t짜리 '헤론(Heron)'에 이르기까지 UAV마다 키파(유대 남자가 쓰는 챙 없는 모자)를 쓴 기술자들이 달라붙어 부품을 끼워넣고 있었다. 이 UAV들은 대부분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된다. 현지 탈레반(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과 8년째 전쟁 중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이 주요 고객이다.

    UAV는 조종사가 없으니 인명 피해가 없다. 또 길게는 2~3일씩 체공이 가능하다. 고도의 위험이 따르는 정찰 임무나 순간 포착이 중요한 정밀 폭격에 적합하다. 산악 및 도시지역에서 비정규 무장집단을 상대해야 하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전에서 기존 첨단 전투기들은 맥을 못썼다. 대신 이 UAV가 가장 각광받는 무기로 발돋움했다.

    이 시장에서 이스라엘 업체들의 활약은 발군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 중인 캐나다·스페인·호주·스페인군 등이 IAI와 경쟁사 엘비트시스템스로부터 UAV를 구매했다. 프레데터와 리퍼 등 최강의 UAV 기종을 운용하는 미군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치열하고 규모가 큰 전쟁터인 아프가니스탄의 하늘을 이스라엘제 UAV들이 뒤덮고 있는 것이다.

    UAV는 이스라엘 군수산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일례일 뿐이다. 로켓과 미사일, 레이더, ISR(정보감시정찰) 시스템 등 첨단 전자기술을 요하는 분야에서 이스라엘 업체들의 경쟁력은 독보적이다. 2006년 이스라엘 방산업체들의 수출액은 44억달러로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의 뒤를 이어 5위에 올랐다.

    이스라엘 외무부의 라츤은 "걸프전 때 텔아비브 해변으로 떨어지던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을 미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격추하는 걸 아버지와 지켜봤다"며 "살아야겠단 생각은 모든 이스라엘인의 원초적 의지"라고 했다. 사방에 가득한 적, 이에 대한 응전과 생존의지가 이스라엘 군수산업의 자극제였다는 얘기다.

    인상적인 건 이들 업체의 수출 비중이 총매출의 평균 80%란 것. IAI의 경우 작년 매출 35억8500만달러 가운데 81%(28억9900만달러)가 수출이었다. 자위권을 위해 매달린 분야가 효자 수출산업으로 진화한 셈이다.

    첨단 군사장비 개발로 싹튼 원천기술은 IT(정보기술) 등 하이테크 산업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전 세계인들이 일상에서 이용하는 혁신적인 신기술들의 상당수가 이스라엘이 고향이다. 컴퓨터 사용자라면 최소 하나쯤 갖고 있는 USB 플래시메모리, 인터넷 채팅(인스턴트 메시지) 프로그램의 원조인 ICQ, 컴퓨터 파일 압축의 신기원을 연 집(Zip) 기술 등의 본적지가 이스라엘이다. 휴대전화의 초창기 기술도 모토로라의 이스라엘 연구소에서 개발됐다. '방화벽(firewall)'으로 불리는 인터넷 보안 기술의 지평을 연 것도 이스라엘 회사들이라는 게 정설이다. 첨단기술 업체들이 상장되는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이스라엘 기업 수는 현재 62개로 비(非)미국 업체 중에선 1위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에란 유반 공관 차석은 "아이디어가 좋고 실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과감히 연구 자금을 제공하는 정부의 벤처 정책이 주효했다"며 "정부는 이렇게 투자한 돈의 80%가 하수구행이 될 것임을 알지만 생존한 기업들이 10배, 20배의 수익을 돌려줄 것이란 확신 또한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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