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속 번영 61년… 이스라엘을 다시 본다] [1] 가자(Gaza·팔레스타인 자치지구)로 통하는 관문엔 8m 장벽… 매일 전쟁같은 생필품 전달

조선일보
  • 특별취재팀
  • 김형기 부국장
  • 박종인 기자
  • 이용수 기자
  • 박승혁 기자
    입력 2009.10.21 03:01

    전쟁·평화의 공존
    이스라엘 케렘 샬롬 검문소 철문 열고 구호품 하역하면 팔레스타인 트럭이 가져가
    테러막게 서로 600m 거리
    이곳을 거치는 식·의약품이 봉쇄된 150만 주민의 젖줄

    땅에선 사막과 시커먼 아스팔트가 열기를 내뿜고, 머리 위에선 뙤약볕이 쏟아졌다. 겨우 오전 10시다. 그보다 더 숨 막히는 건 풍경이었다. 사방을 둘러싼 높이 8m짜리 콘크리트 보안장벽,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는 저격수, 사납게 짖어대는 탐색견…. 스피커를 찢을 듯한 여자 목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지금 야적장에 있는 이스라엘인들은 신속히 밖으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이스라엘 보안요원과 개들이 수색작업을 벌이던 야적장은 순식간에 텅 비었다. 저격수는 자세를 낮추고 소총 방아쇠를 만지작댔다. 이스라엘측 철문이 닫혔다. 150m쯤 떨어진 반대쪽 팔레스타인측 철문이 열렸다. 팔레스타인측 트럭 11대와 지게차가 일제히 진입하더니 야적장에 가득 쌓인 화물을 옮겨 싣기 시작했다. 15분 후. 작업을 끝낸 팔레스타인 차량들이 야적장 밖으로 빠져나가자 이번엔 팔레스타인쪽 문이 닫히고 이스라엘쪽 문이 열렸다. 저격수는 긴장을 풀고 방아쇠에 걸쳤던 손을 이마로 가져갔다.

    이스라엘 서남부 네게브 사막에 있는 케렘 샬롬(Kerem Shalom) 검문소. 이스라엘, 가자지구, 이집트 국경이 만나는 이곳은 가자지구를 바깥세상과 잇는 유일한 통로다. 한때 가자와 이스라엘을 연결하는 검문소는 7개였다. 3년 전부터 본격화한 하마스 무장단체들의 공격과 올해 초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 이후 이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폐쇄됐다.

    2006년 6월 하마스의 기습으로 이스라엘 병사 2명이 죽고 길라드 샬리트(Shalit·당시 19세) 상병이 납치된 곳도 이 부근이다. 지난 13일 이곳으로 취재진을 안내한 NGO '신외교중심(Center for New Diplomacy)' 대표 아뷰 코헨(Cohen·32)은 "이곳도 작년 4월 자폭 테러 공격으로 완파된 뒤 20일 만에 15만㎡ 규모로 새로 지었다"고 말했다. 당시 테러범들은 다이너마이트 1.5t을 나눠 실은 차량 2대를 폭파해 검문소를 날려버리고 이스라엘 병사 1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피부로 느껴지는 불안감이 무채색 검문소를 짓누르고 있었다.

    2007년 6월 하마스는 온건파인 파타세력을 가자에서 축출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를 육·해상에서 봉쇄하며 하마스 고사(枯死)작전을 폈다. 덩달아 일반 시민들도 생존의 위기에 빠졌다. 국제사회의 반발에 이스라엘은 유엔 등 국제기구들이 제공한 생필품에 한해 가자 주민들에게 전달하기로 합의했다. 매일 석유 100만L와 천연가스 200t도 검문소에 설치된 파이프를 통해 가자로 공급된다. 군용으로 쓰일 수 있는 목재·콘크리트·금속류는 반입 금지다. 하마스 산하 무장조직들은 가로등 기둥에서 양계장 축사 파이프에 이르기까지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두 동원해 로켓탄을 만들어왔다.

    테러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겹겹의 장치들 때문에 절차는 정교하고 복잡하다. 구호품을 실은 이스라엘 트럭들이 검문소에 들어오면 폭발물이나 금지 품목을 찾기 위한 엑스레이 검사가 실시된다. 이후 트럭은 2만5000㎡ 크기의 야적장으로 옮겨져 보안요원과 탐색견에 의해 2차 검사를 받는다. 밀수품들도 적발된다. 이날도 야적장 한편에 상자 수백개가 쌓여 있었다. 겉은 '작업복(work uniform)'이라고 적혀 있는데 뜯어보니 알록달록 위장무늬가 찍힌 중국산 군복이다. 사전정보를 입수해 적발한 것이라고 했다. 2차 검사가 끝나면 경고방송과 함께 이스라엘쪽 문이 닫히고 반대편 팔레스타인쪽 문이 열리면 문 밖에 대기하던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쌓여 있는 물품들을 팔레스타인 트럭들에 옮겨 싣는다. 야적장에서 이스라엘측 요원들과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시차를 두고 작업한다. 대면 접촉은 원천 불가다. 팔레스타인 트럭들과 이스라엘 트럭들은 항상 600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저 장벽 너머가 가자지구 이스라엘과 이집트 그리고 가자지구가 만나는 가자 남단 케렘 샬롬 검문소. 육중한 콘크리트 장벽을 사이에 두고 가자 쪽과 이스라엘 쪽 통문이 서로를 바라본다. 멀리 있는 중무장한 병사는 가까이에서 사진 찍히기를 거부했다./특별취재팀

    이런 식으로 하루 트럭 100여대 분량의 생필품이 가자로 전달된다. 이스라엘의 국경 봉쇄와 경제 제재로 신음하는 150만 가자 주민들에겐 케렘 샬롬 검문소를 통과하는 구호품들이 생명의 젖줄이다. 케렘 샬롬은 동시에 하마스의 주요 테러 목표이기도 하다. 검문소 기능 마비로 가자 주민들이 위기에 빠지면 하마스는 그 책임을 이스라엘에 떠넘길 수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도 언제든 하마스의 테러 도구가 될 수 있다. 한 보안요원은 "내가 팔레스타인 트럭 기사라고 치자. 그런데 하마스가 내 아들을 납치한 뒤 '아들을 살리고 싶으면 검문소에 테러를 해라'라고 하면 어찌할 것인가. 아버지로서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여기서 일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이스라엘 정보당국의 신원조사를 거쳐야 한다. 이날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를 쳤다. 동행한 외무부 직원 라츤(35)은 "하마스측이 보도를 보고 일을 저지를까 두려우니까"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솔이 많게는 10명씩 되는 가자의 가장들에게 이곳은 매력적인 일터다. 이들의 하루 일당은 150~160셰켈(5만원 내외). 가자 주민들의 평균 일당(25셰켈)의 6배다. 검문소 책임자인 아미 샤케드는 "이런 민간인들로부터 테러범을 격리하는 게 내 임무"라고 했다.

    케렘 샬롬은 가자 주민들에겐 생명선이다. 동시에 하마스의 공격 목표 0순위로 언제든 불바다가 될 수 있는 곳이다. 히브리어로 '평화의 포도밭'을 뜻하는 케렘 샬롬에서 이날도 이스라엘 보안요원들과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음식, 옷가지, 의약품을 트럭에 가득 실어 가자지구로 운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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