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첫 한·루마니아 사전

조선일보
  •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 김도원
    입력 2009.10.20 03:15 | 수정 2009.10.22 11:48

    1872년 미국인 윌리엄 C 마이너는 정신병 요양차 런던에 왔다가 발작 상태에서 행인을 살해했다. 자수한 그는 정신병원 평생 구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독방에 갇힌 채 21년 세월을 옥스퍼드사전 편찬을 돕는 데 바쳤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어떤 단어가 몇 페이지, 몇 행에 쓰였는지 일일이 색인을 만들었다. 사전 편집진은 그가 보내주는 방대한 자료를 "정보의 수도꼭지"라고 불렀다.

    ▶"사전을 만드는 것은 따분한 일이다."(18세기 영국 저술가 새뮤얼 존슨) 사전 편찬은 어지간한 끈기와 집념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옥스퍼드사전은 71년 만인 1928년에야 10권짜리 초판이 완간됐다. 한 단어가 처음 쓰인 문헌과 저자를 밝히고 그 문장을 예문으로 싣는 일이 그만큼 엄청났다. 마이너를 비롯한 수백명의 자원봉사자가 아니었으면 감당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마이너에게 사전 편찬 봉사는 속죄의 길이었다. 모로하시 데쓰지를 대한화(大漢和)사전 편찬의 길로 이끈 것은 은사의 한 마디였다. 도쿄고등사범 담임이었던 대일본국어사전 저자 마쓰이 간지가 "한자사전은 제대로 된 게 없으니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권하면서였다. 모로하시는 눈을 너무 혹사해 한쪽 눈까지 실명해가며 중국 강희(康熙)자전보다 방대한 사전을 펴냈다.

    ▶조르제타 미르초유라는 74세 루마니아 할머니가 12년 집필 끝에 첫 한국어·루마니아어사전을 완성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이 전했다. 그 원동력은 생이별한 북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는 6·25 때 루마니아에 위탁교육시킬 북한 전쟁고아 3000명을 이끌고 온 북한 사람과 결혼해 함께 북한에 갔다. 1962년 딸을 데리고 잠깐 루마니아로 다니러 나온 그에게 북한은 다시는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지난 47년 내내 남편 생사와 소재도 일러주지 않았다.

    ▶미르초유 할머니는 하루 다섯 시간씩 사전을 쓰느라 눈도 건강도 나빠졌지만 남편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해 즐겁게 작업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지난 6월 루마니아 북한대사관이 2004년 남편이 사망했다는 확인서를 보내왔다. 그는 마저 사전을 마무리했고 한국 학자들의 감수를 거쳐 출간할 계획이다. 한·루사전이 마지막 망부가(望夫歌)가 된 셈이다. 16세기 이응태라는 안동 사람 묘에서 아내가 머리카락을 삼아 묻어준 미투리가 나왔다. 미르초유 할머니가 남편에게 바친 사전은 그 미투리만큼이나 절절하고 한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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