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에게] 88년 만에 우측보행 돌아온 이유

조선일보
  • 정상호·교통안전공단 이사장
    입력 2009.10.20 03:16

    정상호·교통안전공단 이사장

    OECD 국가 중에서도 인구밀도가 유난히 높은 우리나라. 러시아워가 되면 보행공간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전통적으로 우측보행을 생활화해온 우리나라는 1921년 조선총독부 '도로취체규칙'에 의해 보행방법을 좌측보행으로 변경한다. 좌측보행은 최근까지만 해도 당연하고 익숙한 보행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으며,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등 교육현장에서도 대부분 좌측보행을 권장했다.

    하지만 아무리 교육을 받았다 해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좌측보행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몸이 편한 대로 우측보행을 하는 사람들이 뒤엉키기 마련이다. 몸이 편한 대로 우측으로 가려는 사람과 교육을 통해 좌측보행이 몸에 밴 사람들 사이엔 서로 어깨가 부딪히는 불편함이 있었다. 1921년부터 88년간이나 이어져 온 좌측보행 문화가 지난 10월 1일부터 서울지하철 전 역사를 시작으로 우측보행으로 바뀌게 됐다.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온 좌측통행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이제 와서 바꾼 이유는 우측보행이 우리의 신체 특성과 일치하고 글로벌 사회의 에티켓과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걸을 권리가 있으며 대부분은 일정한 규칙 없이 무의식적으로 보행한다. 하지만 복잡한 거리에서 모두가 지켜야 하는 약속이 없다면 거리는 일순간 혼란에 빠진다. 스페인이나 아르헨티나처럼 안전성을 이유로 우측보행으로 법제화한 나라도 있다.

    그동안 좌측보행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점과 불편함은 우리 주변 곳곳에 내재되어 있었다. 공항게이트나 회전문은 우측 보행으로 출입하게 설치돼 좌측보행 시 혼란이 발생한다. 보행 시 짐이나 우산 등을 운반하는 경우 오른손 사용이 77%로 역시 좌측보행 시 충돌이 발생한다.

    좌측보행은 특히 차도가 분리된 도로에서는 매우 불리했다. 과거 조사된 보행자 사고 건수를 살펴보면 차량을 마주 보고 통행하는 것보다 차량을 등지고 통행할 때 교통사고가 많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인도 위의 보행도 마찬가지다. 우측통행을 하게 되면 차도 쪽으로 걷는 사람이 달려오는 차와 마주 보면서 걷게 된다. 그만큼 운전자의 실수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보행문화가 개선되면 교통사고의 약 20%가 감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체심리 측면에서도 눈동자의 움직임이나 정신부하 심장박동수가 감소되어 심적 안정감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우리에겐 보다 안전하고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보행환경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많은 홍보를 통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보행문화를 만들고, 시행 초기에 사회적인 혼란과 비용을 줄이는 것이 당면과제로 남아 있다. 보행문화 개선으로 안전 수준과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은 바로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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