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쓸쓸했던 '항일(抗日)기념비 제막식'

조선일보
  • 조백건·사회부
    입력 2009.10.19 03:06

    조백건·사회부
    지난 17일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미산시(蜜山市) 스리와에 항일투쟁유적기념비가 세워졌다.

    미산은 임시정부가 들어선 상하이와 함께 일제시대의 주요 독립운동 기지다. 조선사람 수천 명이 모여 벌판을 개간하고 독립군 군량미를 수확했다. 이범석·김좌진 장군 등이 미산을 거점으로 군대를 일으켰다. 그런데도 요즘은 학자들 말고는 미산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이번 기념비 건립은 더 늦기 전에 역사를 되새기자는 취지다.

    그러나 씁쓸한 대목이 있다. 이번 제막식에는 미산시 당서기 등 중국 고위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 정부에서는 아무도 안 갔다.

    이태복(59)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민간인 5명이 그동안 기념비 설립운동을 펼쳐온 자격으로 참석했을 뿐이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기념비 설립운동을 시작한 뒤 여러 차례 보훈처에 미산의 역사를 설명했지만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결국 이 전 장관 등 민간인들이 중국 정부와 접촉해 기념비를 세워도 될지 물었다. 우리 정부와 달리, 미산시는 흔쾌히 허가를 내줬을 뿐 아니라 기념비 세울 땅까지 내줬다. 조경공사도 해줬다.

    우리 정부는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에 인색한 편이다. 일제가 실시한 호적제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무국적자로 살았던 단재 신채호 선생은 해방 후에도 쭉 무국적자로 남아 있다가 올 4월에야 대한민국 국적을 갖게 됐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동상은 몸뚱이가 잘린 채 서울 명륜동의 한 가정집에서 녹슬어가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장관까지 한 사람이 이런 말 하기 민망하지만, 우리 정부는 역사에 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과거는 쓸모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공직사회에 팽배하다"고 했다.

    "애초에 보훈처에 미산 얘기를 할 때도 별 기대는 안 했습니다. 마땅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니 '말이라도 해보자'는 것뿐이었지요. 공무원들은 예산 핑계를 대는데 사실 역사를 기념하는 것은 큰돈 드는 일이 아닙니다. 기념비 만들 돈을 모을 때는 아예 정부에는 말도 안 꺼냈습니다."

    기념비 제작엔 1000만원이 들었다. 이 전 장관 등 12명이 조금씩 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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