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VIEW] 쉬쉬 35년… '가짜 평준화'에 속았다

조선일보
  • 안석배 기자
    입력 2009.10.14 03:08

    정보 공개 안해 처진 학교' 방치 학력差만 더 키워

    1973년 2월 27일, 민관식 당시 문교부 장관은 고교 학생 선발에서 학교별 시험을 금지하고 평준화 제도를 도입한다는 혁명적인 교육 담화를 발표했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내세운 이유는 세 가지였다. 평준화 제도를 통해 ①사(私)교육을 줄이고 ②입시에 휘둘린 학생들의 심신을 발달시키며 ③학력이 낮은 학생들 학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었다.

    그후 35년. 우리가 다 아는 대로, 대한민국은 사교육 천국이 됐고, 밤늦도록 학원을 쫓아다녀야 하는 학생들의 심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피곤하다. 그래도 하위권 학생의 학습 수준을 끌어올려 평균 수준에 몰리도록 하는 '학력(學力) 평준화' 효과는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공개된 수능시험 성적 자료를 보았더니 이마저도 허상이었다.

    2009학년 고교별 수능 성적에서는 평준화 지역 안에서도 고교 간 학력 차가 크다는 게 확인됐다. 대구 수성구에서 언어·수리·외국어 평균점수가 제일 높은 경신고(337.29점·범어동)와 시지고(313.35점·신매동)는 차이가 25점에 달했고, 서울 강남구에서도 휘문고(329.67점·대치동)와 현대고(303.49점·압구정동)의 차이는 26점이나 됐다. 비교대상 학교의 사회·경제적 배경은 비슷하다. 지방 비평준화 고교나 특목고와 일반고와의 성적 차이는 당연할 수 있지만, 일반계 고교끼리 격차가 이렇게 큰 이유는 무얼까?

    서울대 백순근 교수는 "'가짜 평준화' 현상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교육 현장의 정확한 실태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껍데기만 평준화'라는 것이다. 하위권 학생도 학업 수준이 높아져 중간에 접근하게 하는 '진짜 평준화'가 이뤄지려면 정확한 학업 수준 실태가 공개되고, 그에 따른 '맞춤형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것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준화 자체에 대해선 많은 국민들과 교육학자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백 교수는 "평준화의 본래 취지는 뒤처지는 학생들을 끌어올려 '상향 평준화'를 시키는 것이고 이를 정착시켜야 하는데, 정부는 어느 학교가 학력수준이 높은지, 어느 학교에 보충 학습이 필요한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숨겨왔다"고 말했다. 학교 성적을 공개해야 성적 낮은 학교에 우선적 지원을 하고, 우수 교사를 배치해 학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평준화의 착각'에 빠진 정부는 이런 과정을 무시했다. 겉모습만 '평준화'였지, 실상은 학교들을 격차 확대의 함정에 '방치'해 놓았던 것이다.

    미국영국 등 대부분 나라가 우리처럼 '평준화'를 교육정책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의 평준화는 '다양성'과 '투명성'이 뒷받침되고 있다. 학교의 학업성적을 학부모들에게 공개하고, 다양한 학교 유형을 제공해 학생들에게 '학교 선택권'을 부여한다. 교내에서도 수준별 수업과 교과교실 수업을 하고 있다.

    반면 국내 학교들은 '획일화'에 매달렸다. '평준화=획일화'라는 논리가 지배한 것이다. 실력차가 큰 학생들이 한 학급에서 수업을 하고, 교사는 중간 수준의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그 결과 '너무 쉬운' 상위권이나 '너무 어려운' 하위권 학생들은 저마다 학교 수업을 외면한다. 고려대 홍후조 교수는 "수준별 이동수업이 평준화 제도와 함께 시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는 학교에 지나치게 간섭했다. 수업시간표까지 정부가 짜주고, 학교의 다양성 교육은 대부분 금지됐다. 1980년대 중반부터 특목고가 만들어졌지만, 대부분 고등학생들은 똑같은 학교에서, 똑같은 교육과정을, 똑같은 교사로부터, 똑같은 진도에 따라 공부했다. 그 결과 '공교육 붕괴'가 나타났다.

    그런 상황에서 사교육 영향력이 커지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지역 학생들의 학력은 올라갔다. 지난 2004년 서울대 김광억 교수팀이 발표한 '누가 서울대에 들어오는가' 논문은 "평준화 정책이 진행되자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가정의 학생들이 서울대에 입학하는 비율이 높았다"고 밝혔다. 교육을 통해 사회적 계층 이동이 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그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진 것이다. 저소득층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중간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던 평준화 정책이 실제로는 정반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번 학교별 수능성적 공개는 그동안 철저히 숨겨온 사실이 알려진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면 안되며, 성적 공개로 밝혀진 하위권 고교에 어떤 정책을 펴 학력수준을 끌어올릴지, 정부가 어떻게 저소득층 학교를 도와줄지 고민하고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형식만의 평준화'를 보완할 수 있는 우리만의 '대안'이 있어야 '진짜 평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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