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학부모 속여온 평준화의 실상

조선일보
입력 2009.10.13 23:02

추첨으로 신입생을 배정하는 평준화 고교들은 학생들 성적이 비슷비슷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딴판이었다. 본지가 보도한 전국 7대 도시 520개 평준화 고교의 지난해 수능 3개 영역(언어·수리·외국어) 평균 점수를 보면 330~340점대 학교가 있는가 하면 250점을 겨우 넘는 학교들도 있었다. 서울만 따져도 수능 1등 학교(평균 326점)와 꼴찌 학교(200점) 점수 차가 126점이나 났다. 부산, 대구, 인천도 구·군별 평균 점수 격차가 56~70점이나 됐다.

야당과 좌파(左派) 언론, 전교조는 이 보도를 놓고 "학교를 성적순으로 줄 세운다" "평준화를 흔들려는 의도 아니냐" "교육 경쟁이 강화되고 대학의 고교등급제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위선(僞善)의 냄새가 풀풀 나는 주장이다. 좌파와 전교조는 같은 평준화 학교인데도 어떤 학교 평균 성적이 다른 학교보다 수십 점이나 떨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추첨으로 그 학교에 배정된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을 감당할 수가 없으니 진실을 그냥 묻어두고 가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야 지금의 위장된 고교 평준화제도를 그대로 끌고 갈 수 있다는 뜻이다.

평준화 고교 간 실력 격차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학군(學群) 간 격차인데, 예를 들어 서울의 서초·강남구 평균 점수는 311점인 반면 최하위 구는 247점이었다. 여기엔 사교육(私敎育) 격차가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건 대한민국 교육의 부인할 수 없는 환부이고 극복해야 할 과제다. 곪은 부위는 고칠 방법을 강구해 고쳐 나가야 하는 것이지 덮어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다.

또 하나의 요인은 사립고와 공립고의 차이다. 평균 점수 상위 30개 학교에 광주지역 학교가 9군데나 들어갔는데 모두 사립고였다. 광주는 2002년 고교 배정 때부터 선지원·후추첨 제도를 도입했고 그후 사립학교 간 선의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광주의 사립고들은 대부분 밤 11시 이후까지 방과 후 수업을 한다. 전국 10등 안에 든 학교 가운데 개성고와 대덕고를 제외하면 모두 사립고다. 개성고는 부산상고에서 일반고로 바뀌면서 2006~2007년 일시적으로 내신 전형이 허용됐고 대덕고는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학교다. 사립학교 교사는 5년 주기로 학교를 옮기는 공립과 달리 자기 학교라는 인식이 뚜렷한 반면 공립학교엔 전교조가 강하다. 학생들은 공·사립 구분 없이 추첨으로 입학하는 데도 공립이 사립에 비해 학습능력이 뒤처진다면 그 원인을 밝혀 어떻게든 고쳐야 한다.

평준화제도의 무엇이 어떻게 잘못돼 있기에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지를 알아야 그걸 고칠 방법을 강구할 수가 있다. 학교 간 성적 격차를 무슨 기밀(機密)이라도 되는 것처럼 학부모 모르게 쉬쉬하고 감춰서라도 평준화를 계속 끌고 가자는 사람들은 겉으론 평등론자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그 속을 캐보면 위선적 비(非)평등론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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