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에 끌려간 춘원(春園·이광수) 북(北) 회유에도 협조 거부"

조선일보
  • 이명진 기자
    입력 2009.10.09 06:16

    6·25 납북 가족 생생한 증언 사료집 2권 나와

    "인민군이 '잠깐 가자'고 하고선 나가고 아버님이 나중에 나갔는데… 그때 어머니가 막 큰절을 하면서 '잡아가지 마세요' 말렸어요. 겨우 17살 정도밖에 안되는 군인(인민군)에게 그랬어요."

    소설가 춘원(春園) 이광수가 1950년 7월 12일 서울의 자택에서 북한군에게 피랍되던 상황을 차녀인 이정화(74)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미국시민권자인 이정화씨는 처음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춘원이 인민군에게 여러 회유를 받았는데 거부했으며, 9·28 수복 후에 형무소에 가보니 이미 7월에 평양으로 압송된 뒤였다고도 했다.

    이씨의 증언은 사단법인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이사장 이미일)가 8일 발간한 '한국전쟁납북사건 사료집 제2권(총 1192페이지)'에 다른 납북자 가족 69명의 증언과 함께 실렸다. DJ정부 때인 지난 2000년 11월 납북자 가족 5가족이 모여 만든 협의회는 6·25 당시 납북자 관련 자료들을 발굴하고, 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하는 등 정부도 하지 않던 일을 해온 단체다. 2006년 사료집 1권을 냈고 이번에 두 번째 사료집이 나온 것이다.

    사료집 2권에 담긴 증언들은 당시 북한의 지식인 납치가 계획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과 함께 남겨진 가족들의 고난(苦難), 이념으로 갈라진 우리의 비극적인 민족사도 담고 있다.

    조선일보 기자와 연합신문 편집부국장을 지낸 언론인 안찬수(安燦洙)씨의 부인 김옥명(94)씨와 딸 안병숙(73)씨는 "(안찬수씨가) 납치되고 나니까 그 사람들이 반동분자네 집이라고 전부 다 가져가고 밥그릇, 숟가락 10개로 마루에서만 살라고 했다"면서 "대문에는 '국유건물접수증'이라고 빨간 딱지를 다 붙이고… 된장 간장 항아리에도 페인트로 칠해서 '여기까지만 먹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저명 철학자였던 한치진(韓稚振) 전 서울대 교수의 딸 한영숙(62)씨는 "당시 우리집에 친척 120여명이 함께 살았는데, 그들 중 서울대 다니고 그러던 사람들이 다 공산당이 된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피신해 숨어 있는 아버지를 납치하는데) 앞장을 섰다"고 말했다. 구자옥(具滋玉) 전 경기도지사는 무장한 북한 정치보위부원에게 연행돼 납북됐다고 외손자 황규필(79)씨는 설명했다.

    이번 사료집은 또 협의회가 새로 발굴해낸 납북자 관련 역사 자료들도 담았다. 특히 'UN군총사령부군사정전위원회 대한민국군대표단'이 1963년 1월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실향사민(失鄕私民·납북자) 명부 1권'은 당시 정부가 3년 이상 조사 끝에 만든 것이다. 원래 2권으로 돼 있었을 이 명부의 1권에는 납북자 1만1700명의 이름과 나이, 성별, 주소가 가나다 순으로 기재돼 있다.

    협의회는 이로 미루어 아직 찾지 못한 2권까지 합치면 2만명 이상의 명단이 기재돼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일 이사장은 "인원수가 가장 비슷한 1954년 내무부 치안국 작성 명부(1만7940명)와 비교해보니, 30%가량은 새 인물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사료집은 기밀해제된 미 국무부의 1급 비밀 문서 가운데 휴전 협상 당시 미 국무부 동북아 담당 부국장이 극동담당 차관보에게 보낸 전문(1951년 12월 11일)도 실었다. '납북된 남한 민간인 송환문제로 휴전 협상이 지연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내용으로, 납북자 송환이 사실상 정치적 이유로 좌절됐음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협의회는 말했다. 협의회는 이에 따라 미 의회가 당시의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켜주도록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