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포커스] 못받은 45억 출연료 부도사태 도대체 왜…

조선일보
  • 최승현 기자
    입력 2009.10.09 06:22 | 수정 2009.10.09 11:13

    속타는 연기자들… 방송사들은 "외주 제작사와 연기자들 간의 문제" 책임 떠넘겨
    주연·조연 할 것 없이 모두 어려움 겪어
    근본 원인은 방송사들이 외주사에게 제작비의 50~70%만 지급한다는 것

    2일 막내린 SBS 아침 드라마 '녹색마차'는 결론을 맺지 못할 뻔했다. 종영을 일주일 앞두고 연기자들이 "출연료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며 촬영 거부에 들어갔기 때문. 당시 미지급된 출연료는 8억여원. 다행히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아직도 연기자들은 출연료 2억8891만2896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연기자들에 대한 출연료 미지급 사태가 한국 드라마계를 흔들고 있다.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이한 한예조)에 따르면, 현재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자들이 받지 못하고 있는 출연료는 45억여원. 이런 사태는 대부분 외주제작 드라마에서 발생한다. 경기 불황의 영향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채널 편성권을 쥐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가 외주 제작사에게 실 제작비의 50~70% 선만을 지급하면서 벌어지는 기형적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녹색마차
    고질이 된 출연료 미지급 사태

    한예조 김응석 위원장도 출연료 미지급 사태의 피해자다. 지난 5~6월 방송된 MBC '2009 외인구단'에 출연해, 밤샘 촬영까지 하며 열의를 불태웠지만 그는 돈 한푼 받지 못했다. 그에게 돌아와야 할 몫은 1000만원. 김 위원장은 "드라마를 통해 광고수익을 얻어 직원들에게 풍족한 임금을 주는 방송사들이 왜 정작 그 드라마에 나온 연기자들이 돈 한푼 못 받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과거에는 주연급 배우들은 그래도 출연료를 챙겨갔는데 요즘은 주·조연, 단역 할 것 없이 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7~9월 방송된 MBC '대한민국 변호사'의 주연 한은정은 최근 드라마 제작사를 상대로 출연료 지급 소송을 벌여 승소했다. 2억1000만원에 출연 계약을 맺은 한은정은 드라마 촬영이 끝난 뒤 4000만원밖에 받지 못한 상태였다. 한예조 조사에 따르면, 이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자들은 아직도 11억여원의 출연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진 위)2009 외인구단, 대한민국 변호사.
    책임 떠넘기는 지상파 방송사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데 지상파 방송사들은 팔짱을 낀 채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출연료는 드라마를 만드는 외주제작사와 연기자 사이의 문제일 뿐"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외주제작사 관계자들은 "지상파 방송사가 주는 비현실적인 제작비로는 이제 연기자들의 출연료 감당이 안 된다"는 입장. '녹색마차' 제작사인 드림핀 미디어 관계자는 "편당 제작비가 2100만원쯤 되는데 방송사에서 받은 돈은 1400만원이 채 안 됐다"며 "나머지는 협찬 광고, PPL 등을 통해 채우라는 식인데, 요즘 경기가 불황이라 그런 방식으로 수익을 얻기가 무척 힘들다"고 말했다.

    한예조 문재갑 정책위의장은 "방송사들이 기반을 갖춘 제작사를 외면하고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신생 업체들에 드라마를 맡기는 경우가 늘면서 출연료 미지급 사태가 빈발하고 있다"며 "연기자들에게는 해당 드라마가 어떤 방송사를 통해 방영되는지가 계약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방송사가 출연료 문제에 눈을 감고 있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한예조에 따르면 KBS, MBC, SBS 방영 드라마의 미지급된 출연료 액수의 합계는 각각 13억, 25억, 7억여원. SBS 허웅 드라마 국장은 "방송사들은 연기자를 통해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출연료 미지급 사태에 도의적 책임감은 늘 갖고 있다"며 "해결의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사는 세상
    수익 구조 못 찾는 외주제작사

    채널을 독과점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의 요구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하고 있는 드라마 외주 제작사들은 수익 구조를 찾지 못해 위기에 빠져 있다. 출연료 미지급 사태가 만성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 따르면, 100여개 제작사 중 적자를 보지 않고 그럭저럭 유지가 되고 있는 회사는 5~6개에 불과하다. 이 협회 김승수 사무총장은 "말도 안 되는 지상파 방송사의 제작비 지급도 문제지만 각종 콘텐츠 저작권을 대부분 방송사에서 가져가 제작사가 외부 투자를 받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 더 안타깝다"고 말했다. 게다가 한류 바람을 타고 천정부지로 치솟은 스타급 연기자들과 작가들의 개런티는 '현실화'가 힘든 상황. 그룹 에이트 송병준 대표는 "우리나라 실정에 비해 특 A급 스타들과 작가들의 출연료가 너무 비싸다"며 "어려운 경제 상황에 맞춰 제작비도 좀 내려가야 되는데 그게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MBC측에 출연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던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 노동조합원들. 이들은 올해“외주 제작 드 라마의 출연료 미지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집단 파업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생계 위협받는 일부 연기자들

    출연료 미지급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오직 드라마 출연으로 생계를 잇는 이른바 '생활형 연기자들'. 김응석 위원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드라마 촬영 과정에 들어가는 각종 경비를 충당하는 단역 연기자들은 막상 출연료가 안 나오면 살 길이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며 "그분들 입장에서는 생존권의 문제"라고 말했다. 보조 출연자, 일명 엑스트라들에게도 출연료 미지급 사태는 위협적이다. 보조 출연자 용역 업체 한강 예술의 이상태 사장은 "최근 2년 사이 용역 업체들이 드라마 제작사로부터 받지 못한 돈이 12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보조출연자 노조 문계순 위원장은 "보조 출연자들 중 상당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라 제때 출연료를 받지 못하면 그 여파가 엄청나게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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